전기도 없는 산골마을
마을 앞개울에 얇은 살얼음이 얼던 한 밤중에 아버지는 세상을 하직 하셨고
남은 것 이라고는
청상의 어머니와 아직 단 하나도 출가하지 못한 일곱 남매들 이었다
고향은 멀고 현실로 닥친 상황은 버겁고...
재직 중 교단에서 돌아 가셨으니 이제 이곳이 고향 이라며 순수한 떼 고집으로 뭉친 인근 마을 사람들 뜻대로 저기 멀리 초라한 시골학교가 보이는 순한 산등성이에 모셨다
그리고 또 숱한 풍상의 세월을 청상의 지친 몸으로 견뎌내신 어머니의 신앙 같은 합장 뜻에 따라 같은 자리에 두 분을 모셔야 했다
어느 날 인가
벌초를 위해 그곳을 찾았을 때 산소 오름 길 입구에 비닐하우스 하나가 들어서 있었다. 그 다음 해에 또 하나가 늘고 그 다음 해에는 비닐하우스 안에 주택 하나가 마련된 듯 싶더니 입구 전체가 비닐하우스 단지로 둔갑을 해 버려서 이제는 그 집 마당을 거쳐 산소에 당도하게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나이가 같다는 문제
그 친구의 친구가 내 친구라는 공통분모, 그 이 후 우리는 그냥 친구가 되어 버려서 봄철 사초 때거나 가을철 벌초 때 들리게 되면 당연 했던 것 처럼 선물하나를 준비해서 건네주곤 했었고 그 친구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키워낸 버섯 한 바구니씩을 들려주곤 했었는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가을 벌초 길에 들려 보니 비닐하우스는 물론 이거니와 집 까지도 온통 회오리 바람을 맞은 것처럼 엉망으로 흩어져 있고 사람 사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 이었다
버섯 뿐 만이 아니고
이제 농사꾼으로는 먹고 살 길이 없다는 푸념을 세상물정 모르는 나는 그저 죽는 소리로만 알았는데
망해 가지고 이런 저런 부채에 시달리다 못해 온 가족이 야반도주를 했나?
남편의 그을고 시골스런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고운 화장으로 늘 집안에만 있던 부인과 헤어졌나?
어떤 추측 할 수 없는 힘든 일로 시설이며 땅 조차 팔지 못하고 떠나야 했나 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내 일 같은 무게로 쏟아지더니 추석 성묘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집 마당에 못 보던 트럭 한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 남자였다
얼굴은 더 그을고
마주 잡은 손은 나무껍질 보다 더 거칠다
도저히 견뎌 낼 길이 없어 원주로 집을 옮겨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했다...
리모델링...
농사꾼의 삶을 오십 넘은 나이에 리모델링 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아주 빠르게 상황이 읽혀졌고 그리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 어디에서 적당히 견적을 내고 틈 없이 사람을 부려 이 살벌한 도시 속을 유영하는 치열함이 보이는가?
온통 초록 흐드러진 산 속에서 열심히 땅만 일구어 온 그에게 남은 시간들은 도시 속의 그들처럼 유연하고 윤기 흐르는 날들이 될 수 있을까?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다
그래 씨발~
우리 원주바닥 후미진 목로에 앉아 치악산 단풍빛으로 얼굴이 물들도록 술이나 한잔 빨자 그리고 취해서 몸뚱이 흔들리거든 이노무 도시 속에 대가리 처박고 시원 시원 오줌이라도 깔겨 보자
세상물정 모르고 땅에 처박혀 살던 너나
세상물정 모르고 산속으로 기어 들어가 처박힌 나나
저 흔들리는 세상
팔뚝 걷어 붙인 채 감자도 한방 멕이고
두손 모아 똥침도 한대 놓아 보고...
제기럴
가을 이구나
사는건 삭막 할 지라도
가슴 속에는 단풍빛 보다 더 뜨거운 핏빛 애정을 담아 이 못난 나 라도 꼬옥 끌어안아 보자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