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마늘을 놓다

햇꿈둥지 2005. 11. 2. 12:01

 

 

벌레도 먹고

새도 먹고

자연도 먹은 뒤이지만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이렇게 많은 들깨를 베었습니다

 

들깨를 베어 아름으로 나르는 동안 코 끝에 감기는 진한 향기,

이래서 들깨를 취소(臭蔬)라고도 이름 했구나...

 

또 다른 게으름이겠으나

이제 새들은 그만 먹으라고 마르는 동안 비닐 망으로 단도리를 했습니다

 

별스럽지 않은 가을날 농부의 일상이겠으나

두고 두고 벼르기를 근 한달이었으니

들기름이 되어 목젖을 넘거나 말거나 이렇게 매듭 하나 지은 것 만으로도 입찢어지게 행복 합니다

 

날나리 농사꾼...

 

 

처음 이 산골로 이사 오던 해

집 뒤의 밭 한켠을 호비작~ 헤비작~ 파 헤쳐서는 마늘을 심었습니다 무려 다섯 접,

그 이듬 해 우리는 세접의 마늘을 수확했고

내 손으로 심은 쪽마늘이 다시 통마늘이 되어 돌아 왔다는 사실에 고무된 우리는

수확량에 관계없이 마을 이장에게 자랑을 했고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마을은

집집 마다

화장실 마다

소 키우는 집 외양간은 물론,

돌아 가신지 100일을 넘지 않은 무덤 속에서 마져

낄~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는 소동을 만들어 냈다는 겁니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마을 어르신들과 나누는 가끔의 대화 속에서

참 진솔한 자연 동화적 표현을 배웁니다

우리네 살이가 지나치게 사람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자연 친화든

자연 동화든

자연 보호든

몽땅은 사람의 만용에 의한 표현일 뿐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표현들에 대해 우리 모두는 많이도 둔화되어 있지요

 

산에 오른다...든가

집안의 애경사를 위해 날을 잡았다...든가...의 표현이

오래 전에는

산엘 들고

날을 받는다...는 자연동화적이며 순명적 표현 이었다는 거지요

 

어찌 되었든

올해에는 마늘을 심지 않고 놓았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과 해와 달과 별과 바람,

아침마다 시리게 내리는 이슬까지

그 예쁜 마늘쪽들을 품에 안아

다독 다독 자장 자장~

키워 주시기를 고대하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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