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딱~ 만원만~

햇꿈둥지 2005. 5. 27. 08:14

 

내 사는 촌마을의 Downtown(?)

 

 

성국씨,

성은 모른다
나이는 나 보다 아래이니 올해 마흔 후반쯤 초로의 늙은이가 되어 있겠다

처음 이사하던 해

머리는 봉두난발에
촛점 없는 눈동자
알아 듣기 힘든 말들
대화를 할 때도 눈동자를 마주 보지 않는 자폐증 같은 증세

한 눈에도
술 귀신 뒤집어 쓴 모습이 확연히 보였다

그런 모습의 그를 만났다

그는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낮이 되거나 밤이 되거나
한달 서른 하루
2월달 달력에도 31일까지 채워 넣은 후
죽으나 사나 술을 마셔 온 공로를 뼛속 깊이 새겨 넣던 마누라가 새볔 바람에 튀기까지는 물론, 그 이 후로도
장소불문
청탁불문
안주불문
주대불문
초대불문
남여불문
생사불문의 자세로 술을 마셔 댔었다

마을에 행사가 있는 날이면
행사 시작 다섯 시간 전 부터 마을회관에 왕림 하시어 술병 반경 5미터를 벗어나지 않은채 눈빛을 가다듬어 댔었다
그리고
술잔을 받으면 절대로 다시 돌려 주는 법이 없었다
받은 술잔을 술상 아래 일렬로 정렬 해 놓았다가 술 자리가 파 한 뒤에 빈 병에 다시 담아 들고 집으로 돌아 가곤 했었다

어느 해 봄인가
그런 그에게 아내가 제안 했었다

술 값이라도 줄테니 산에 올라가 고춧대로 쓸 나무를 해 보라...고

술 값에 목젓이 늘어진 그는 그렇게 하루의 노동을 했고
당연히 받아야 할 오만원의 돈은 이장 주머니에 들어가 버렸다

유일하게 소꿉 친구인 이장은
그 돈 줘 봐야 대번 술 집으로 갈테니 내가 보관 했다가 라면 이라도 때 맞추어 살 들여 줄테다...였는데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이 친구,
이날부터 친구인 이장을 바쁘게 한다

"나머지는 네가 갖고 나 딱~ 만원만 줘~"

이 통사정을 배겨 낼 재간이 없던 이장은 이렇게 만원씩, 만원씩을 주기 시작 했다는데
이게 딱 오일만 하고 말아야지
허구헌날 이장집에 들이 닥쳐서는

"나머지는 네가 갖고 나 딱~ 만원만~"으로 근 이주간을 개긴 끝에
우리의 성국씨,

이장 주머니에서 십삼만원을 뜯어 냈다는 것이다(화이팅~)

그는 지금 마을에 없다

어느 핸가
알콜 중독 치료를 위해 정신 병원에 강제 입원이 되었다 했다
요즘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초록이 구실이 되고

꽃잎도 구실이 되어
매일 쐬주 한병씩을 비우고 있으므로...

 

(사는게 하도 두서가 없어 이 일 말고는 규칙적으로 하는 일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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