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깨 쏟아지게 산다

햇꿈둥지 2005. 10. 21. 15:05

 

 

 

제목을 깨 쏟아지게 산다고 했으니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대처로 다 떠나버려 초로의 중 늙은이 둘만 사는 시간들이 알콩달콩에 참기름 들기름 범벅의 세월을 맛탕처럼 사는 줄 아시겠으나

아무래도 이쯤의 시간에서

올해의 농사결산서를 작성해 볼까 생각 중에 제목으로는 이 보다 더 기막히게 맞을 것이 없겠다 싶어서일 뿐,

 

지난 해

멧돼지에게 헌납한 옥수수며 고구마의 씁쓸한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생각에서

올해는 참깨며 들깨를 제법 너른 면적에 심었습니다

 

농사에 대한 우리의 공식은

마을의 농삿꾼들 같지 않게 상당히 무분별 하고 게으른 중에도 우리 스스로는 그 방법을 자연농이라고 고집하며 살지요(상당히 위안이 됩니다)

 

지금 마을 대부분의 논, 밭은 황량 합니다

논의 벼는 거두어졌고 밭에는 김장용 무우 배추가 듬성한 외에 이미 겨울 준비를 마쳐 버린 셈 이지만

우리의 자랑스러운 자연 농원(?)은 갈색의 가을 색이 완연한 중에도 아직

울울창창...입니다

참깨 벨 시기를 놓쳐 바람만 불어도 싸락눈 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깨가 쏟아지기 시작한 다음에 우리 부부는 수확을 하기로 결심 했지요

 

드뎌 깨를 거둘 시기가 그야말로 무르익었구나~

 

그런데 이 참을성 없는 깨들은 싸가지 없이 낫을 대기 바쁘게 몽땅 쏟아져 버려서

일의 결과는 개떡 이지만

어쨌는 우리는 깨 쏟아지는 날들을 맞이 할 수 있었습니다

베어 봤자

털어 봤자

우리는 말짱 황~ 의 노동에 땀을 흘리고 있었고

맨 바닥에 내년의 씨앗이 충분히 뿌려질 쯤에는

긴 천막을 바닥에 대고 한놈 한놈 벨것 없이 그 천막에 깻대를 자빠뜨린 다음 온몸으로 털어내는 악전고투 속에...

 

자랑스럽도다~

한 말도 훠얼씬~ 넘는 깨를 수확 하고는 입 찟어지게 만족해 하는 동안

세월은 가을의 등짝 뒤에서 모서리 날카로운 삭풍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삭풍이 부는구나...

문득 예감되는 겨울이여~!

 

그런데

제미럴~

 

순서를 정 하기에

참기름 다음에 들기름이니

참깨 먼저 베고 들깨 베자...였는데...

 

다른 집 밭에 들깨 서 있는 풍경을 볼 수가 없어...

우리 집 밭에만 한겨울 허수아비 처럼 우쭐우쭐 서 있으며

참깨에 이어 쏟아지는 들깨...들...

 

이장 집과

마을 모든분들의 집과

하늘을 우러러

드뎌 쪽이 팔리는구나...

 

여보~!

 

우리

크리스마스 전에는 들깨 마저 베도록 합시다~

 

어쨌든 깨 쏟아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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