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가을 질환

햇꿈둥지 2005. 10. 4. 14:28

 

 

도시 멀미 증세를 이길 수 없어

야반도주하듯

이곳 산 속으로 몸을 옮겨 산지가 두손 손가락 숫자를 벗어 난 만큼의 햇수를 넘기며 살아도

사람의 끈을 놓아 버릴 수는 없으니

툭하면 도시를 넘나들게 되는데 이게 보통 고욕이 아니다

도시의 언저리에 당도하기 전 부터 밀려드는 일종의 기피증 들은

그 많은 사람의 숫자들 앞에서 반가움 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운 느낌으로 몰려 오고

제멋대로의 차림새들을 보면서는 그만 따악~ 도로 뛰쳐 나가고 싶은 생각들 뿐이니

볼 일 긴한 도시의 어느 집을 찾아 들어서는

필요한 일,

꼭 봐야 할 일...만 숙제하듯 봐 치우고는 도망치듯 빠져 나오기 일쑤라서

더러 아내의 표현을 빌자면 일을 보는게 아니라 민망함의 두께만 더 하는 병적인 증세라...

 

더더구나의 문제는

하룻밤을 묵어야 할 경우

그 집 식구들의 춥다...는 눈치에도 아랑곳 없이 부부가 똑같이

거실에서,

베란다의 외창을 빼꼼~ 열어 숨통이 틔어야 잠을 잘 수 있다보니

이젠 정중하게 방을 내어주는 의례적 손님의 범주를 벗어나 시골 별종으로의 특별한 이해를 구 하는데는 별반 문제가 없어지는 것 같기는 하다 

 

주5일 근무제의 정착으로

짧고 분주한 평일,

길고 넉넉한 휴일을 보내고는 있는데

나름대로의 이런 저런 휴일 프로젝트(?)들은

찾아 나서게 되거나

찾아 오시는 님들로 박살이 나기 일쑤라서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쌓여만 가는 일 앞에서 발을 동 동 구르기도 이젠 옛일,

 

될대로 되라

 

내일해도 될 일을 오늘 하려고 지랄하지 말자...등 등 말도 되지 않는 말들을 신조화 하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거나

지난 3일의 연휴도

윗 형님의 생신을 위해서 하루,

처가의 장인 어르신 제사로 하루...를 박살내고 보니

죄없는 산 속 식솔인 여섯마리의 개들만 목 마르고 배곺은 시간들로 보내게 되었다

3일의 돌아침을 마치고 부랴 부랴 서둘러 집 안엘 들어보니

 

 

 

농삿꾼연 함에도

정작으로 농사 일은 개떡도 몰라서 건성 건성 난봉꾼 집 드나들듯 하니

저 아래 영인네 논이 훌쩍 베어져서 비워진 걸 이제야 본다

 

늘 그랬듯이

이 산골에 유일한 답작인 저 논이 비어지고

산 그림자 더욱 길어진 뒤에

난장을 치던 삭풍이 내 집 좁은 문틈을 비집고 들어서면

인색했던 가을과는 변변한 인사를 나누지도 못한 채

 

이내 겨울...

 

그 분주했던 사람의 거리를 탈출하듯 빠져 나와야 하는 병증을 끌어 안고 살면서도

 

이쯤이면

자꾸 외로워지는

 

또 하나의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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