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움나도 말릴 사람 하나 없던 촌동네가 술렁대기 시작했다
십분에 한번씩 하품을 쏟아 내다가
그까짓 계산
손가락 꼽아서 해도 그만일 뿐이던 농협 마트 매장의 아가씨도 모처럼 장날을 맞아서
뒤지게
억수로
환장하게 바빠 보인다
삼겹살,
구이용 번개탄,
석쇠...또 또 또...
옛날 옛날 청계천 다리밑을 연상 시킬만큼
이 다리 저다리 내 다리 네 다리...할 것 없이
다리 아래마다
물 빠진 웅덩이에 올챙이 몰리듯
바글 바글 굽고 지지고 먹고 마시고
여름을,
계곡을 통째로 구워 먹을건가 부다
#.
처형이 오고
동서도 오고
동서의 마누라인 처제도 오고
그 처제의 동생도 오고
처형의 딸래미가 오는데
그 딸래미의 두 아이들이 따라 붙어 오고
조카도 오고
그 조카의 아이들도 팁으로 묻어...와서
집은 완전히 처가 종합 선물세트가 되었다
그리하여
내가
이모부가 되는건지
고모부가 되는건지
형부가 되는건지
할아버지가 되는건지
도대체 뭣이 되는건지
생각 하다가
생각 하다가
폭탄주에 취하듯 까무러쳐 버렸다
#.
전화가 왔다
도시에 사는 후배의 목소리가 양귀비 꽃을 발견한 아편쟁이 목소리 처럼 달콤하다
이 얘기 저 얘기...
전초전으로 탐색전으로...그리고 적당한 때에 떡밥을 뿌린다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휴가 올거지?
그래서 또 이 집을 잠시 점령 하겠다는 거지?"
"참 귀신이유~"
"이번 주말에는 집에 없을테니 그냥 와서 맘대로 퍼 먹고 놀다가 쉬다가
그저 심심해 죽겠거들랑 개밥이나 좀 주고 가라" 했더니만
그럴거 없이 아예 개를 잡아 먹어주면 어떻겠느냐?...는 고마운 말씀,
그런데 요즘 개값은 좀 나가나?...
#.
발악처럼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이렇게 울던 매미 소리가 사위어지고 산 그늘 앉는 시간부터 섬돌 밑이 소란스러워지면
그때가 달력으로는 팔월이든 뭐이든 관계없이
이 산골에 먼길을 돌아 온 나그네 처럼 가을이 찾아 온다는 걸
날나리 산골살이 12년을 꿰 뚫어 알고 있다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문득 예감 되는 가을
그 가을의 서러움은,
그 눈물은
눈에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가슴 깊이에서 시작 된다는 걸
중병의 환자처럼 깨우치고 만다
#.
쓸 얘기가 없을 때 보다
더 이상 쓰기 싫을 때가
그만 쓰는데는 훨씬 효과적 이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딱
지금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