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굶기를 한 달여쯤
속과 몸이 헐러덩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
이 나이쯤에
풍선 하나를 안고 다니는 것 같은 몸매
어쩐지 무책임해 보인다.
#.
밤새 하고도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
눈도 오고
비도 오고
풀린 듯하다가 다시 추운 거
그러다가 슬그머니 봄이 오는 거
다 자연의 이치이다.
#.
배고픈 이에게
한꺼번에 왕창 먹이면 탈 나는 거 처럼
눈 빠지게 봄 기다리던 이들에게
어느 날 왕창 봄 몰아주면
탈 나기 때문이라는 거다.
#.
그래서 오늘 비 끝에
다시 소슬하게 추운 거
즐겁게 견디기로 했다.
#.
이 비 속에
늙은 형님이 전화해서는
부모님 선영을 둘러봐야 한다는 거다
비 오는 날
세상에 있지 아니한 엄마 아버지 생각하는 거
청개구리나 할 일이다.
#.
볕 바른 자리에
우선 참나물이 일어서고
순서 없이
온갖 풀들이 일어설 기세이다.
#.
머리채 휘잡아
싸울 일만 남았다.
#.
아내가 밤 늦도록 들어가 사는
티비가 고장났다고
무슨 무슨 장치를 새로 했다는데
말로써 말 많은 세상
말로써 껐다 켰다 하는
말로 되는 기계를 매 달아 놓고
신기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
서가의 책 몽땅 팔아서
말 한마리 사야겠다.
'풍경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 연두, (0) | 2022.04.13 |
---|---|
화양연화(花樣年華) (0) | 2022.04.02 |
봄 처녀 제 오시고, (0) | 2022.03.19 |
각자코생, (0) | 2022.02.26 |
착종(錯綜) (0) | 2022.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