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er & woman/소호 김 원준 화백]
산 속에 흙으로 버무린 오막살이 한채가 그럭저럭 마무리 되고
삐딱하게 비탈진 움막살이를 벗어 난 기쁨에 취해 나날이 깡쐬주의 자축연에 취해 있던 날,
멀리 가평 축령산 자락에 사신다는 어느 분의 전화가 있었다
누구인지...들려봐도 되겠느냐는...
이 집은 지어진 것이 아닌
우리 부부의 힘으로 낳아진 집...이라는 표현을 서슴치 않을 만큼 고무 되어 있던 우리는 이 낯선 손님맞이를
망설이지 않았고 몇일 뒤에 승합차 한대가 치악의 비포장 길을 올라 왔었다
의외의 일,
목발을 짚으신 초로의 부부가 내려 섰고
불편한 걸음걸이를 옆에서 부축하며 일전의 전화 통화를 한 본인이기 보다는 어디 요양처를 찾아 나선 중병의
환자신가?...생각 했었다
바삐 점심 준비를 하는 아내 곁에서 압박 붕대를 새로 감아 드리고...
그렇게 만나게 된 분이 화가이신 소호 김원준 화백 이셨다
근 10여년간 축령산 속에 칩거 하시며 작품에만 전념 하셨다는 말씀 중에
이날 이때껏 누구에게든 작품을 팔지도 주지도 않으셨다는 분이 이 누옥의 방문 기념으로 선뜻 건네 주신 작품이 위
사진의 판화 한점 이었다
그렇게 해서 산골짜기 오막살이에는
문화적인 그림 한점이 이렇게 걸리게 되었고
가족분의 사업 중에 빚어진 예기치 못한 상황이 소호 선생님의 작품 활동은 물론
이런 저런 문제들로 비화되어 그만 우울증이 깊어가신다는 소식에 가끔 축령산을 들려 안부를 여쭙고는 했었다
[誘惑의 前提/소호 김 원준 화백]
우리가 처음 축령산을 찾아 가던 날,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들떠 잠마져 설치셨다는 선생님은 이런 저런 음식 준비며 당신이 가장 아껴 드신다는 좋은 차마져 아낌없이 내어 주시더니
결국은 당신 안방 벽에 고이 걸어 두시고 늘 아껴 하시던 작품 한 점을 미련 없이 떼어 주셨었다
한 겨울 먹을 물이 고장나서 고생한다는 말씀을 들으시고는
그 먼 길 차안에 pet 물병을 한아름 안고 찾아 주시기도 했던 분...
오늘 저녘엔
변덕 같은 안부 전화라도 한통 드려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