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우울하다

햇꿈둥지 2006. 3. 8. 14:05

나 보다 다섯살이 위인

베드로 안젤라 부부...

 

그들 부부를 만난 게 벌써 8년 전이니 시간은 참 무겁다

 

쓰레기 차 피 하려다 똥 차에 치이듯이

IMF에 치여 어찌 어찌 택 한 것이 홀로살이의 귀농 이었다

아니다

피도(避都)이며 잠적 이었고 그토록 갈망하던 휴지기 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15년여를 살아 오던 안양의 이웃동네

그리고 천주학쟁이라는 공통분모가 서로의 마음을 여는데 큰 무게로 작용 했었고

너무도 착하기만한 분위기 앞에서 나 또한 그의 몸을 둘러 싸고 있는 현실을 송곳니 부러지도록 물어 뜯어주고 싶었었다

 

내 사는 앞 동네에서

경험없는 버섯재배를 시작한 그의 매일매일은 늘 시행착오 였고 좌절 이었었다

그의 앞에 놓인 모든 문들은

오로지 입구의 기능만으로 작용 할 뿐

단 한번도 출구의 기능을 가진 것 처럼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래도 그는 늘 웃음기 띈 얼굴로 살아내고 있었다

그를 보면 나는 늘 작은 예수님을 보는 것 같았었다

깡마르고

검게 타고

어눌한 말투...

 

현실의 무게를 나누어진다는 것이

부부 따로 도시와 시골에 나뉘어 살아야 하는 날들

 

모처럼 시골엘 내려 왔노라는 안젤라의 전화를 받고 저녘 손님이 되었다

 

족발 하나와 쐬주 서너병을 펼쳐 놓고 밤이 깊다

마른 웃음 속에 늘어지는 서로 살이의 얘기들이 날선 유리조각처럼 가슴 깊은 곳을 아프게 한다   

술 자리만 보면

"각자 한병씩"을 고집하던 아내도 어제 만큼은 계엄령을 해제한 상태

한잔은 술이 되고

한잔은 한숨 섞은 눈물이 되던 자리

 

버섯 잘 키워 떼돈이 되라고 빌어 본들...

 

바보같은 나는 그랬다

지금의 상황에서 아무 목표도 정 하지 말고

그냥 합친 생활을 하라고...

둘이 몸 포개어 살아 왔듯이 맘 포개어 살면 그만 아니겠느냐고...

 

다듬다 만 버섯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구석 켠에선

구닥다리 티븨가 웰빙 요리법 소개에 한창인데

 

이노무 세상

무어 이리 맞아 떨어지는게 하나도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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