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섭리

햇꿈둥지 2005. 6. 20. 09:34
 
 
 
                                                             [신림 금옥동 박씨 영감님 댁]
 
요즘 아침의 날밝는 시간은 대충 새볔 네시 삼십분 경 입니다
따로 시계 볼 것 없이 날 밝으면 들에 나가고 해 떨어지면 하루 일이 끝 나는, 그래서 시골 농사 일은 다분히 해바라기 노동 일 수 있겠습니다
한낮 뙤약볕 아래 꼬부려 일을 하다 보면 쉽게 진력고 나고 꾀도 나고...이렇지만 농사 일이란 이런 저런 요령도 별반 효과가 없는 그야말로 바보 같은 자세로 진드감치 매달려 있다 보면 꼭 움직인 만큼 효과가 나타 나지요
다행이다 싶은 건,
이렇게 일 많은 농사철이면 일찍 해 뜨고 늦게 해지니 그만큼 흙에 매달려 일 할 시간이 많은건데
일년 내 내 이 꼴이면 농사일로 배겨 낼 재간이 있겠는지요?...
모두들 수명에 관계없이 골병으로 죽어 날 판인데
하지를 지난 날 부터는 다시 쪼금씩 낮은 짧아지고 밤은 길어져서 여름동안의 긴 노동이 휴식으로 대체 된다는 기막힌 섭리 입니다
 
마을 박씨 영감님 댁 재산 목록 1호인 누렁이 암소 입니다
 
겨울 지나 온 들에 따스한 햇살이 치렁하게 늘어지고 새순이 돋는 날 부터 더운 콧 김을 힘겹게 뱉어내며 밭갈기, 논갈이에 애를 쓰더니
온 들에 초록 지천으로 익어가는 요즘,
이 녀석은 오뉴월의 휴식에 한가로와 보입니다
 
눈동자며
세월아 네월아의 되새김질이 하도 여유로워 보이길래 잠깐 모습을 담아 왔습니다
 
이 녀석이야
제 모습이 이까잇~ 인터넽에 소개가 되든 말든 이겠습니다만,
 
봄 내내 박씨 영감님과 한 몸이 되어
이랴~ 이랴~ 워~ 워~의 유일한 언어에 따라 움직이던 그것들이 생존 보다는 사랑 이었음을,
그리하여 그 고운 흙에 씨 뿌려 싹 틔우고 울울창창 자라 오르는 저 곡식들이 장차 내 몸의 음식이 되어 줄 거란 믿음을
저 크고 고운 눈 가득 담아 
눈으로 보다는 작은 창으로 빛나고 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 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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