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에서 보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79년 가을부터 이듬해인 80년 4월 까지이니 그저 한해 겨울을 난 셈인데 문제는 그 산속에서 고립감에 빠지기 보다는 기가 막히게 잘 적응을 해서 아예 주저 앉을까 마음을 굳힐 판에 일 하나가 생겼다
산 속에 처 박혀 있는 동안 주민등록지인 여주에서는 예비군 훈련의 거듭된 불참으로 고발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근 세달 뒤에야 받을 수 있었고
잠시 다녀 오리라는 마음으로 짐을 싸들고 내려 온 것이 영 영 이별이 되고 말았다
미친 놈, 정신 나간 놈, 젊은 놈이 어찌 그리 세상을 읽지 못하고 거꾸로 살려 하느냐는 어머니의 성화와 욕설에 멱살을 잡혀 그만 주저 앉고 말게 된것이다
되돌아 보면 젊은 시간을 그저 건성으로 만화책장을 넘기듯 살아 온 것 같다
산을 내려와서도 한다는 일이
손재주 좋은 고향 선배와 손잡고 난시청 해소용 티븨 증폭기를 만들어 판다든가
도자기 화공 노릇도 잠시 했었고
남한강에서 내수면 불법 어로도 했었고...
그러다가
면서기 일이 싫어 밤마다 술에 절어 휘청거리는 친구놈의 도움으로 이나라 정부미 포대에 담기는 일(공무원)을 선택 하므로써 좌충우돌 우왕좌왕의 시간들을 모두 접어버리고 말았다
사실은
그때 어머니의 강권에 등 떠밀리지만 않을 수 있었다면 나는 지금쯤 꼴리는대로 창공을 날아 다니는 나비 한마리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다만
그 산속에 칩거해서 되는대로 시간 죽이기를 하는 동안에도 아무 말 없이 참고 기다려 준 지금의 아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서석에서의 기억은
아무래도 내 안의 탯줄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연유로 생활 터전을 일찌감치 강원도로 옮겼고
땅을 사서 흙집 하나를 지어 놓은 후 2년 전쯤 아내와 함께 그곳 서석을 둘러 볼 기회가 생겼었다
맑은 물 곱게 흐르던 개울가의 방앗간이며 제재소는 간곳이 없고 그 자리에는 예쁜 전원 주택 하나가 들어 서 있었다
흙먼지 풀 풀 날리던 거리들이 말끔하게 포장이 되어 있고
PC방이며 노래방 간판이 말끔한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들...
이제 이 거리 곳곳은 깊은 송진 냄새를 풍기는 대신 삐까번쩍 주머니 속의 지폐를 유혹하는 불빛만이 넘쳐 나고 있었다
30년쯤의 시간이 훌쩍 흐른 뒤였다
꺽지 아저씨며 미자 아줌마는 아직도 이 거리 어느 곳에 살고 있는걸까?
봉두난발을 한채 눈밭에서 막사발 쐬주 잔을 기울이던 고다시꾼들도 살고 있을까?
1,2,3학년 한반, 4,5,6학년 한반 뿐이든 작은 시골학교의 가난한 아이들은 훌쩍 중년의 나이가 되어 억척스럽게도 오늘의 시간을 헐어내며 살고 있을까?
맑은 물을 느릿느릿 유영하던 개울 속 꺽지며 눈 맑은 물고기들은 아직도 그렇게살고 있을까?
"맞어 나 땡초여~ 젊어서는 한가락 했었지 내 얘기 좀 들어 볼라나?"로 시작해서 댓병 쐬주가 빈병이 되도록 거나하게 취 해서는 독경 대신
"이 풍진 세상을 마~안났으니~"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 주던 초막거사님...
이젠 덮여진 책장같은 날들,
거울 속 내 머리에는 흰머리만 성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