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칙하고
축축하고
눅눅해서
빗 속인지
물 속인지
환장 하겠다
비 오기 전 호기롭게 뜯어 벌린 동력 분무기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모터 결선을 개떡같이 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방훈련을 치르고 난 뒤로
이노무 모터가 홀라당 타 버려서 거금을 들여 내부 코일을 수리 했다
집 뒤 너른 밭은 울울창창 하다. 풀들이...
아랫집 영인이네 옥수수 밭은 쓰러지고 자빠지고 난리가 났지만
우리 고추밭은
말뚝도 안 세우고 버팀 줄을 늘이지도 않았지만
단 하나도 쓰러진 녀석들이 없다
고춧대 보다 더 크게 자란 풀들이 사방을 둘러 싸고 있으니
즤까짓게 자빠질래야 자빠질 수가 없음이다
비 그친 다음
아무래도 인간적이며 마을 정서에 부합하는 자세로 풀들을 뽑아야 할 텐데
조심 조심 뽑아야 할 것 같다
지금 내 예상으로는
그 우거진 풀 속에 틀림없이 산삼 몇 뿌리쯤은 자라고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감자는 아직도 흙속에 묻혀 있다
전체적으로 올 농사를 평가 하자면
분명하게 遺棄農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지난 해는 물론
그 앞
그그그그 앞 해의 경험에 비추어
감자를 캐서도 내 입에 들어 간 것 보다는 도시의 친지들에게 나누어진것이 더 많았으니 올해는 스스로 캐 가라고 하는 것이 훨씬 나을듯 싶다는 판단 때문이다
농사에 임 하는 자세나 농법을 발전 시키기 보다는
그 외의 문제에서 잔머리를 잘 쓰는 것이 뼈 빠지게농사를 짓는 것 보다 효과적 이라는 것을
10년 넘는 시점에서 깨우친 것이다
이제 다음 주 부터는 장마가 끝나서
유리 조각 같은 햇살이 쏟아질 것이고
휴가를 떠난
이 사람
저 사람
그 사람...들이 들이 닥쳐
멀쩡한 내 집을 점령한 후 황공 하옵게도 자기들의 휴가 분위기에 우리들을 끼워 넣어 줌으로써 나는 따로 휴가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이 내 집에서 스스로 마당쇠질에 만족 하도록 만들어 놓을 것이 분명하다
피서는 한문으로 避暑라고 씀으로써 돈 들이지 않고 얻어 보는 사전 속에도 "더위를 피 함"이라고 되어 있건만
避暑가 아니라
避西로 바뀌었는지
신발 있고 차 있는 사람들은 몽땅 동쪽으로 몰려와서
이 난리법석을 떨어야 하는건지...
그러나 어쩌랴...
복중의 이 빗속에서 햇살을 그리워 했던 것 처럼
고요한 산 중,
해 넘어 가기 바쁘게 울어대는 풀무치 소리를 들으며
가슴 가득 사람의 그리움을 태산처럼 끌어 안고 마는 것을...
'소토골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토골 점령 당하다 (0) | 2006.08.02 |
---|---|
장마 유영 (0) | 2006.07.30 |
oh! Sunshin~ (0) | 2006.07.20 |
유월을 쥐어 짠다 (0) | 2006.06.28 |
유월을 거둔다 (0) | 2006.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