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눈 쓸어 득도하다.

햇꿈둥지 2022. 12. 15. 05:21

 

#.

밤 새 눈 내린 뒤

하늘은 시침이 똑 뗀 채 정지한 듯 푸르러서

진공의 허공에 가느다란 철사줄을 휘두르면

쨍그랑 깨질 것 같은 산골 아침,

#. 

도시에서 느끼던

소란하고 끈적한 추위가 아닌

명료하고 청량한 산골 추위,

#.

추위는

투명하게 전도된다.

#.

올 겨울 들어 처음 사용 탓인지

송풍기 시동으로 잠시 용을 썼더니

손바닥에 대번 물집이 잡히고도 아릿한 통증,

#.

백수의 손이

참 까탈도 많다.

#. 

도회 형제의 일로

하룻 밤 이틀 낮 동안 집 비운 사이

집안으로 잠입한 고양이 두 마리가

구석에 모아 두었던 습자 뭉치를 헤집어 놓은 채 

찢고 뭉개고···

#.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두 손 들고 무릎 끓려 앉혀 놓고는 반성문 열장쯤 받으려 했으나

요놈들

짐짓 모른척 즈이덜끼리 시시덕 장난질,

#.

세월에 묻혀

흑백의 기억조차 흐릿해져 가는 늙은 선배께서

막 잠 들려는 초저녁 전화로

시콜시콜 지난 얘기들, 

#.

누군가의 기억 속에

여전히 푸릇한 새순으로 살아있다는 것,

#.

기어이

손잡아 만나기를 도모한다.

#.

서둘러 만나야 할 이유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누군가 세상을 떠나며 만들어 준 자리에서

무겁고 슬프게 만나야 하니까···

#.

다시

아침 든든하게 먹고

눈 치워 길을 열어야겠다.

#.

수도(修道)하여 득도(得道) 하는 일,

요로케 간단하다.

#.

눈 썰매 탈 곳은 쓸지 말라는

정우의 전화,

#.

아무리 생각해봐도

눈 치우는 노고가

함께 놀아주는 고행보다 나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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