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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너머 맛집 할머니께서 가게를 닫으셨다
여기저기가 아픈 탓에 몸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아
음식에 정성을 다 할 수 없음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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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보다 병원에 있던 시간이 더 많던 날들,
겨우 겨우 몸을 추슬러 집에 오는 길에
그저 안부 인사차 잠시 들리면
많은 손님 젖혀 둔 채 옆에 앉아 내 등을 두드리며 말씀하셨었다.
많이 먹어
뱃고래에 힘이 생겨야 산다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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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넓은 세상천지
또 하나의 의지처를 상실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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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할머니의 퇴직을 위로하고자
동쪽 바다를 한 바퀴 둘러 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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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뺀도롬한 고속도로를 버려두고
강원도 속살의 핏줄 같은 옛길을 돌아 돌아
할머니 어린시절 고향 마을도 지나고
그 오랜 기억의 갈피를 들추어 지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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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주 쉬어 망연한 눈빛이 되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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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 마루에 자리 잡아
마른 산나물 이거나
이제 막 쥐어짜듯 칡즙을 만들어 내거나
옥시기 동동주를 팔기도 하는
늙은 주인과 마주 앉아
산 아래 세상 얘기를 시콜시콜 떠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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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르고 너른 바다
흰 포말을 앞장 세워
한사코 뭍에 오르고 싶은 파도를 격려하고
그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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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죄도 물을 수 없는
등 푸른 생선 몇 마리로 차려진
늦은 점심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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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불분명한 음식 앞,
퓨전 아이들의 긴 줄과
겨울 눈 빛의 시린 윤슬과
비명 같은 갈매기 아우성과
가끔은
길게 밀리기도 하는 귀가 길을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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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보다
따듯한 온기가 가득한
내 집에 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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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로록
할머니의 문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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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참 고마웠네
우리 아들보다 낫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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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보다 낫다니...
거짓말도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