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깨어진 꿈들을 위한 기도

햇꿈둥지 2005. 5. 12. 09:02

 

 

신림에는
현대화 된 가게가
하나,둘,서이,너이,다섯,여섯, 일굽 개가 있구요
농협도 있구요
약국과 약방도 있구요
쪼끄만 의원도 두개나 있구요
장차 진료 과목에는 상사병을 기어이 포함 시키겠다는 의사도 있구요
핵교도 있구
우체국도 있구
불 끄는 소방서와 경찰지서도 있구요
별거 별거 다 있는 쪼끄만 동네 이지만
내가 잘 가는 가게는
옛날 옛날 가게 같이 허름해서
저 구석에 잘 안 팔리는 꽁치통조림은 케케의 먼지를 뒤집어 쓰고도
별 일 없이 진열 되어 있는 담배 가게지요
그 옆에는 주인 아저씨가
가게를 반쯤 막아서 이발소를 차렸다지요
오늘
담배를 한 갑 사려고 들려보니
주인 아저씨는 어떤 할아버지의 머리에 헝클어져 자란 시간들을 가즈런히 다듬고 있었구요
허리 퉁퉁한 아주머이 느이서 고시톱을 때리고 있었는데
아이구 저누무 예펜네 때문에 내 고도리 깨졌다고 난리치는 통에 잠깐
은근 슬쩍 들여다 보니
팔공산 열끗과 이매조 한장은 의기양양하게 체포해 놓고

호시탐탐 흑싸리 열끗을 노리는 중에 산통이 깨졌구만요
갈색 산속
바짝 근육질의 몸매를 가다듬은 삭풍을 피해
옹기 종기 모여 앉아 봄을 기다리는 날들

담배 한 갑에 대한 인사 치고는 넉넉하다 싶은 인사를 남기고 가게 문을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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