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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사립문의 문설주 같은,
무성했던 잎들 모두 떨군 채
알몸으로 우뚝 선 나무들 같은,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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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첫날은 병원이 예약되어 있었다.
병원 출입구 긴 줄에 동참하는 일이
백세건강의 첩경이라고 믿는
환자 같은 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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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여름내 고단했던 밭의 속살을 뒤집어
마늘을 심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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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침잠의 휴식에 드는 겨울날
나 또한 동안거에 들어야 마땅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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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들판의 간판 요란한 밥집 귀퉁이에서
어느 고승의 선문답을 얘기하고
자기 죽음을 예견하여 정갈하게 살던 자리를 치우고 떠난
고승보다 더 고수의 사람들을 얘기하고···
하다가
영업시간 다 됐다고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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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딱지 식당의 마감 시간도 모르는 우리가
무슨노무 생의 마감을 예지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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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들이
하염없이 잎을 쏟아내는 도시의 거리를 천천히 지나
책방 한켠에 앉아 있었다.
글자들의 숲,
글자들의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다는
어느 깜찍한 글쓴이의 고백에 홀려
기어이 이 산중까지 모셔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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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되기 전에
그의 숲과
그의 생태계를 홀라당 파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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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에 뛰어들어
한아름씩 상을 탄 서실 도반들과 어울려
치악의 늑골을 밟으며
가랑잎처럼 명랑했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