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11월의 무늬,

햇꿈둥지 2021. 11. 2. 17:48

 

 

#.

허술한 사립문의 문설주 같은,

무성했던 잎들 모두 떨군 채

알몸으로 우뚝 선 나무들 같은,

11월,

 

#.

11월의 첫날은 병원이 예약되어 있었다.

병원 출입구 긴 줄에 동참하는 일이

백세건강의 첩경이라고 믿는

환자 같은 신자들,

 

#.

기어이 여름내 고단했던 밭의 속살을 뒤집어

마늘을 심어야 하는가?

 

#.

모두 침잠의 휴식에 드는 겨울날 

나 또한 동안거에 들어야 마땅한 일,

 

#. 

시골 들판의 간판 요란한 밥집 귀퉁이에서

어느 고승의 선문답을 얘기하고

자기 죽음을 예견하여 정갈하게 살던 자리를 치우고 떠난

고승보다 더 고수의 사람들을 얘기하고···

하다가

영업시간 다 됐다고

쫓겨났다.

 

#.

코딱지 식당의 마감 시간도 모르는 우리가

무슨노무 생의 마감을 예지 하겠다고···

 

#.

가로수들이

하염없이 잎을 쏟아내는 도시의 거리를 천천히 지나

책방 한켠에 앉아 있었다.

글자들의 숲,

글자들의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다는

어느 깜찍한 글쓴이의 고백에 홀려

기어이 이 산중까지 모셔오고 말았다.

 

#.

겨울 되기 전에

그의 숲과

그의 생태계를 홀라당 파 먹을 것이다.

 

#.

공모전에 뛰어들어

한아름씩 상을 탄 서실 도반들과 어울려

치악의 늑골을 밟으며 

가랑잎처럼 명랑했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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