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울로 떠난 아이조차 빤한 도시의 가로와
죽을동 살동 달려야 하는 빤질하고 윤기나는 포도에 식상함 때문일까?
늦은 밤
큰 그릇 가득 비비고 버무린 두서 없는 밥을 나눠 먹다가
"우리 내일 앞동네 임도를 걸을까?"
그렇게 들어선 길
굽이는 산모퉁이 뒤로 숨고
돌아 선 산모퉁이 깊이로는 간곳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길고 긴 굽이의 연속
마루에는 반쯤 고사 하고도 의연한 소나무 한그루 위풍당당하고
아직은 겨울이라고
가볍게 내린 눈송이들 낙엽 위로 하얗게 눕던 오후
걷기를 세시간 가량
방향 감각 상실...도대체 우리가 애초에 가늠한 마을은 어디 있을까?
걸음이 힘겨울 무렵쯤 당도한 곳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마을이 있었다
지은지 3년쯤 되었을까?
요란하지 않은 흙집 곁을 지날 무렵 두마리 강아지의 반김 속에
"들어 와 차 한잔 하고 가라"는...
도무지 밖에서는 마을이 있으리라 생각되지 않는 곳에
노년의 부부가 상처 입은 산짐승 처럼 숨어 살고 있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몇개의 길에 의존해서 바라보던 사람의 살이와 마을들...
아직 이렇게 전기도 그 무엇도 없는 산비탈에 의지한 삶이 있다는 것,
아니
시대적 어떤 천박한 치장도 거부한 질박하고 아름다운 삶이 있다는 것
별빛처럼 맑은물이 종알대는 계곡에
봄 그리움으로 여린 털끝을 틔운 버들 강아지
찬바람 포근하게 예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