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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걸린 일력의
삼백예순세번째 장을 떼어 낸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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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묵지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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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집 영감님 창문이
덩치 큰 앞산의 창으로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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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같은 시간
우린 서로의 창을 밝혀
고요히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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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의 시대에
광선과 시선을 질기게 엮은
유선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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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다 비워져 간다.
한 살을 더 먹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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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옹근 나이테 더 함 없이
껍데기의 각질만 두꺼워진듯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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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부끄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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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 한장의 글씨 끝에
남은 먹물로 환을 치고는
새해 인사로 두 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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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먼 겨울길로
다시
아이들 온다는 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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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따듯한 구심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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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음 조금 가벼워질 때까지
꼭 끌어안고
변덕 같은 사랑이라도 한없이 베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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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세월로는 한 해가 비워졌지만
우리 인연으로는 한해가 더해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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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게
모든 이에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