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가슴 속 시린 바람

햇꿈둥지 2007. 6. 5. 08:15

 

 

#.

 

일을 치뤄 낸 기간이 장 장 이년여 이니

보고서 인지 Report 인지의 분량이 제법 무겁다

검토, 수정, 보완...

 

"그냥 報告書가 아닌 寶庫書가 될 수 있도록 정성을 쏟아라"

 

거듭 되는 수정 지시에 얼굴빛이 제빛을 잃어가더니 드뎌 어제 늦은 오후에 마무리를 졌다

덫에서 풀려난 산짐승 같은 표정을 짓는 후배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고생 했다  내일은 쐬주나 한잔 하자...백두산 꼭대기로 잔만 준비해서 와라...'

 

잠꼬대로도 내 욕을 해 대겠지...

 

그렇게 오랜 짐을 덜고 집에 들어선 시간

딸녀석은 풀린 강아지와 씨름을 하고 있었고 윗밭에선 박 종구 씨가 농약을 치고 있었다

도지 라고는 해도 통 농약 모르던 밭에 농약 치기가 어쩐지 미안하다...는 그의 말이 사뭇 고맙고 죄송하다

 

앞산 긴 그림자 그늘에 털푸덕~ 앉고 나니 서로 편하다

그 동안 마음 속 갈피마다 서로를 끼워 넣기만 했지 마을 눈을 피 하느라 변변히 술잔도 가슴 속 얘기도 조심스러워 했던 사이,

 

비로소

그간의 외로움들이 빈 술잔을 채운다

산중 생활의 외로움이 아닌

몇 안되는 마을 사람들 속에서 느끼던 사람의 외로움

 

나는 원래 이 마을 토박이 이므로...

내가 너 보다 이 마을에 더 오래 살았으므로...

그리하여

너는 타관바치 이고

굴러 들어 온 돌 이고...

 

이 무슨 자폐증 일까?...

 

술 몇잔을 비운 뒤

해거름 속으로 떠난 그의 뒷자리에 넝쿨콩 묘종 한판이 놓여 있었다

농사꾼이 나눠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

 

그 묘종들

기둥 아래 가지런히 심으며

우리 인연 또한 넝쿨처럼 길게 뻗어 실한 콩으로 여물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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