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초록 그늘이나 심으려네

햇꿈둥지 2005. 5. 11. 19:47
입방정 때문 이었는지...
산골살이 십여년 만에 드물게 눈 적은 겨울을 나노라...는 탓이 끝나기 무섭게
일기 예보의 수치를 무시한
예의 산꼴짝 특유의 날씨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진눈깨비 이거나
한 겨울의 찬 비 이거나
바람을 동승한 매운 눈보라 이거나
순하디 순한 함박눈 이거나
내 누이가 풀질을 끝내고 눈부시게 펼쳐 입은 옥양목 치맛자락이 스칠 때 같은 소리로 내리는 싸락눈 이거나...

이 모든 상황은 불과 삼일 만에 집 주변에서 아주 변화무쌍하게 벌어졌고

오늘 새볔
치악 소토골의 오두막 주변에는 대보름의 시린 달빛마져 흥건 했었다

이리하여
아내의 팔뚝에 알통이 생기도록 눈을 치웠음에도
소토골은 고립 되었고
꼬맹이 차는 이제 눈 썰매의 기능으로라면 모를까? 저 만치 마을 입구에 방기되어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고

재수 좋으면 한,두번
재수 없으면 다섯번도 미끄러지고 자빠져야 하는 출근과 퇴근을 반복 하면서도
이젠 내 나름대로 경지에 이른게 분명하지...

자빠진채로 아직도 미명의 하늘에 보이는 달빛 이거나
더러는 별빛을 보면서 히죽 히죽,,, 그래 이 정도 투자는 되어야 시골살이지...뭐 이렇게 진화(?)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허기야
나날이 진화를...아니지 문명적 진보를 획책하는 일을 신앙으로 삼는 현대의 무리들은 그 자폐증적 정체성의 틀 안에서 또 다른 특별한 우리를 형성해 내며
이렇게 산꼴짜기에서 자빠져 히죽 거리고 있는 나를 이 시대 퇴행성 바이러스의 한 종으로 분류해 버렸을 것이 분명 하겠지만

그러면 또 어때?
이 시절 나 처럼 산꼴짜기로 뛰어 든 사람들 중에 이 같은 증상을 가진게 어디 나 뿐이든가?
허긴
이런 의식 또한 자폐증적 정체성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겠다만...

어쨌든
신 새볔 눈 밭에 자빠져서
잠깐 생각 했었어

봄 볕 넉넉하게 퍼져서 씨를 뿌리기 전에
마당 주변으로 초록 그늘부터 심어야 겠구나
이른 삼월부터 허공을 연모한 순한 싹이 돋거든
저어기~
햇님으로 향한 하늘 길을 공손한 손짓으로 알려도 줘 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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