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지레 봄,

햇꿈둥지 2021. 3. 13. 05:27

 

 

#.

창밖에 봄날이 흐느적거리기 시작했으므로

어쨌든 구들방을 고쳐 볼 요량으로

구들 전문가인 구들쟁이를 찾았으나

구들 놓는 일 때려치우고 어디 오리를 키우러 갔는지

사나흘을 찾아 헤매어도 오리무중,

 

#.

마을은 이미

함실아궁이는 물론 구들조차 매우 기이해하는

개량된 사람들로 교체를 마친데다가

구들 일을 묻고 맡길 이들은 이미 도솔천을 건너가신지라

 

#.

마지막 선택지 하나는

결국 셀프,

호기롭게 덤벼들어 뜯어보니

역시 구들은 과학이었다.

 

#.

청석판 안에 갇혀 있던

일흔둘의 지살성과

서른여섯의 청강성 귀신들 쏟아져 나오듯이

껌댕이들이 산중 허공에 비산 하므로써

순식간에 내 몰골은

아궁이에서 기어 나온 극성맞은 강아지 꼴이 되었다.

 

#.

최소한의 개폼이라도 지켜야 할 이 나이에 

절대로 할 일이 아닌 것은 분명 하나

이미 벌여 놓은 일,

 

#.

이 바쁜 중에

진입로 다리를 새로 놓고 포장을 하는 일로

당분간 차량 통행이 불가하다는 화급한 전갈이 있어

씻을 새 없이 건재상엘 갔더니만

 

#.

주문을 듣는 일로 보다는 

내 얼굴의 심오한 껌댕이에 관심을 보이며

즈이덜 끼리 실실실 웃고만 있더라.

 

#.

이 아사리 판에 쌍둥이들이 들어섰다.

대번의 일갈,

왜 방바닥에 함정을 만들고 계시어요~

아흐~

통시성 부재의 비애,

 

#.

그런데 기가 막힌 건

저 아랫녘 무등의 나라에서 벌어진

창을 하는 대회에 나가 상을 탔으므로

상금 한 귀퉁이를 뚝 떼어

그 고을 장인이 만들었다는

붓 두 자루를 사들고 왔으니

 

#.

십만 동이 아침 이슬로 

백만 개의 벼루가 닳아지도록 먹을 갈아

쓰고 또 써야 할 일이다.

 

#.

3월은 아직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한 채

창 밖에서 펄럭이고 있는데

괜스레 동동거리는 마음,

 

#.

지레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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