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어쨌든 명절,

햇꿈둥지 2021. 2. 11. 18:45

 

 

#.

올 수도

갈 수도 없는

썰렁하기 그지없는 명절이 되었다.

 

#.

산 넘고

물 건너에 계신

부모님 선영을 찾아간다.

 

#.

아시겠거니와

코로나에 멱살 잡히고

사람의 일에 발목 잡혀

저 혼자 이렇게 왔습니다.

 

#.

향 피워 잔 올리고

갈색의 산속에 홀로 앉아 

흑백의 기억으로 압착된

오래된 일들을 되짚어 보는 일,

 

#.

어리던 제가

이렇게 늙었습니다.

 

#.

해 넘어가기 바쁘게

대문을 잠그셨지만

명절 때면 

밤 깊도록 문을 닫지 못하시던

목마른 기다림,

 

#.

돌아가는 길이면

골목 끝을 지나 뒷모습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오래 문기둥에 기대어 계시던 어머니,

 

#.

지난 일들에

자꾸

노을빛 눈시울이 되고도

눈치 볼 일 없으니

홀로의 성묘

꽤 괜찮은 일이다.

 

#.

바람이 맵다

어여 내려가거라...

어머니 목소리 들리는 듯하여

 

#.

오래 앉아 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허위허위 돌아 선 길,

 

#.

허공 가득

봄바람이 너울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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