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우울한 時代

햇꿈둥지 2007. 3. 18. 10:37

 

 

#

큰 거리

그렇게 큰데도 불구하고 막히고 밀리는 길을 오랜 시간 더듬어 도시를 다녀 왔다

건물들은 까마득히 높고 불빛 화려한 거리

 

더 많은 것을 모아서

더 기름진 음식을 먹고

더 멋진 옷을 입어

더 화려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모두들 발걸음에 날이 선 거리

 

more, more, more...가 주기도문 처럼 뿌려진 거리

 

"이 도시에는 딱 세 종류의 사람들이 살아요

 부자인 사람 이거나

 부자인 척 하는 사람 이거나

 부자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이거나..."

 

딸 아이의 말을 들으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으므로...

 

그 어느 것에도 해당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토록 예리하게 날 세운 시대의 기준으로는 무능이 될 것 이므로...  

 

 

#

소비 하라

이것도 소비하고

저것도 소비하고

혹시 주머니가 비었다면

은행장 명의로 프라스틱 현금을 빌려 줄테니 신용불량자가 될 때 까지, 개인 파산을 할 때 까지 마음 놓고 써 봐라

 

가급적이면 티븨를 오랫 동안 보도록 하라

그러면

어떻게 부자처럼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것이다

 

진정한 자본주의는

정치마져 자본의 하수인으로 만들어 사회 정의를 무산 시키는 일이다

 

손님에 의해 문이 열리기 보다는

빚쟁이에 의해 문이 열리는 횟수가 더 많은 초라한 가게 벽에 걸린

 

"네 시작은 미약 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 하리라..."는 주술 같은 목판 하나,

회색 이거나 갈색 일변도의 삶 뿐인 이 도시에

밤마다 화려한 불빛이 빛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기약없는 사기다

 

 

#

다시

내 무능을 적당히 포장 한채로 살아 갈 수 있는 산 속으로 돌아 왔다

 

무능 하고도

양복에 넥타이 정도의 포장만으로 적당히 안 무능한 부류로 분류되는 사회 오류에 감읍 할 필요 없이

떨어진 작업복 한벌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뒹굴어도

바람처럼 편안하다

 

이제 막 새순을 돋우는

냉이와

돋나물과

주변의 왼갖 나무들과 손 잡고

 

자유롭다

 

누구를 유혹 하거나

누구의 유혹이 전제된

아편 같은 술잔이 아닌

 

이 빠진 내 술잔을 채워

독작의 취기가 낭낭 하고도

이 밤

서글프거나 외롭지 않으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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