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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고 쉬기를 반복하는 비 틈새,
처마끝 풍령은 묵언수행 중
밭오름길이며 고랑마다 풀들이 장대하다
예초기 돌려 풀들을 베는 사이 빗줄기 보다 더한 땀줄기...
마당가 물을 틀어 알몸의 목욕을 하다
산 속에 뚝 떨어져 앉은 집
초록 나뭇잎 틈새에 몸 숨긴채 홀로의 호사에 찬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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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과
초록 틈새에 느리게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이 기꺼이 손님이 되어주는 산 중,
언제부턴가
내 집인양 기대어 살아가는 고양이 두마리
그악스럽게 짖어대던 개들마져 공손한 끼니 나눔을 하고 있으니
굳이 손님의 겸손을 얘기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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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무 한개가 이천이백원이나 하네~"
아내의 호들갑이 윗밭에 심어 두었던 무 밭으로 기억의 골을 내 주었고
버려졌던 무들은 풀밭 속 이거니 그 새 근육질의 장딴지를 세워 우람하게 자라 있었다
정갈하게 다듬어 깍둑 깍둑 썰어대던 무 속에서
물기 어린 초록 휘향 올올이 풀어지던 한낮
숲속 볕뉘처럼 뻐꾸기 울움소리 낭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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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없는 욕심 정도로 빼곡히 심었던 나무들이
집과 사람의 흔적을 초록 일색으로 덮어가더니만
저 아래 마을에서 조차 저 속에 집이 있을까 싶을 만큼 커다란 초록 휘장 아래 숨겨져서
무슨 짓을 하든 그저 은밀한 시간들...
등성이를 오르다 지친 바람과 마주 앉아 희희덕 수다를 떨다가
벌컥 벌컥 들이킨 막걸리 한잔으로 낮잠 혼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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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새
전설이 되지 못한 새소리들
꼬부랑 산길로 이끼져 내리는 밤
주정뱅이 걸음으로
반딪불이 오르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