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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낮은 자리 키 작은 꽃들부터
조심스럽게 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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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유일한 희망은 봄이었으므로
글 쓰기에 다소 지친 서실 도반들이
커피 한잔이 불어 터지도록 숙고한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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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곳으로 떠나
무엇을 보든
다 좋은 철,
이라고 의기투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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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깊은 한숨들을
포말로 끌어안고 몰려와
하염없이 바위에 부딪히는
동쪽의 바다를 향해 떠나고자 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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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합차까지
렌털 계약을 마친 시간
또로록 문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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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한 사정으로
몸 담아 사는 근교의 산성을 둘러보기로 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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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괜찮다···
아무 곳으로 떠나
무엇을 봐도 좋은 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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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 하는 일을 잣대 삼아
마음 달구지 않기로 했으므로
이제 겨우
밭 갈아 감자를 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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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겨우 마음을 고쳐 먹은
늙다리 경운기의 힘으로
느릿느릿 밭을 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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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 돌 투성이의 거친 밭을 갈아
감자를 넣으면
모난 곳 없이 동그란 감자로 키워 주는
농사는
늘 경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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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많이 쉬어
조금 더 많이 게으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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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절부터
내구 연한 초과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여
잠자리에 누우면
이곳저곳 함부로 삐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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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감자와 채소들은
밭이 아닌
내 어깨와 허리와 무르팍에서 자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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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는 동안
운곡의 글 하나를 전지에 쓰는 일로 100번 넘어,
이제 겨우 글 모양새가 바로 잡힌 듯하여
글 꼴을 바꾸어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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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서실도 코로나 손길을 피 할 수 없어
걸린 사람을 헤아리기보다
안 걸린 사람을 헤아리는 게 훨씬 더 쉬운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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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거니
사방에 화들짝
꽃들이 깔깔깔 유쾌한 계절,
무엇을 하든
무엇을 보든
이 아니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