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척후화,

햇꿈둥지 2022. 4. 9. 15:11

 

 

#.

우선

낮은 자리 키 작은 꽃들부터

조심스럽게 피기 시작했다.

 

#. 

지난 겨울

유일한 희망은 봄이었으므로

글 쓰기에 다소 지친 서실 도반들이

커피 한잔이 불어 터지도록 숙고한 끝에

 

#.

아무 곳으로 떠나

무엇을 보든

다 좋은 철,

이라고 의기투합하여

 

#.

바닷속 깊은 한숨들을 

포말로 끌어안고 몰려와

하염없이 바위에 부딪히는

동쪽의 바다를 향해 떠나고자 하였으나

 

#. 

승합차까지 

렌털 계약을 마친 시간

또로록 문자 하나

 

#.

어찌어찌한 사정으로

몸 담아 사는 근교의 산성을 둘러보기로 했다는 것,  

 

#.

괜찮다 괜찮다···

아무 곳으로 떠나

무엇을 봐도 좋은 때이니,

 

#.

이제 남 하는 일을 잣대 삼아 

마음 달구지 않기로 했으므로

이제 겨우

밭 갈아 감자를 넣고자 한다.

 

#.

겨우 겨우 마음을 고쳐 먹은

늙다리 경운기의 힘으로

느릿느릿 밭을 가는 일,

 

#.

모난 돌 투성이의 거친 밭을 갈아

감자를 넣으면 

모난 곳 없이 동그란 감자로 키워 주는

농사는

늘 경외롭다

 

#. 

조금 더 많이 쉬어

조금 더 많이 게으르게,

 

#.

관절부터 

내구 연한 초과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여

잠자리에 누우면

이곳저곳 함부로 삐그덕, 

 

#.

올해 감자와 채소들은

밭이 아닌

내 어깨와 허리와 무르팍에서 자랄 모양이다.

 

#.

겨울 나는 동안

운곡의 글 하나를 전지에 쓰는 일로 100번 넘어,

이제 겨우 글 모양새가 바로 잡힌 듯하여

글 꼴을 바꾸어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

작은 서실도 코로나 손길을 피 할 수 없어

걸린 사람을 헤아리기보다

안 걸린 사람을 헤아리는 게 훨씬 더 쉬운 일이 되었다.

 

#.

그렇거니

사방에 화들짝

꽃들이 깔깔깔 유쾌한 계절,

무엇을 하든

무엇을 보든

이 아니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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