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동무(1)

햇꿈둥지 2006. 8. 21. 17:11

이만큼의 여름쯤이면 하루에 열두번도 넘게 빨가 벗고 개울물에 자맥질을 일삼던 동무가 하나 있었다

학교가 파 하고 나면 이십리 귀가 길을 행길가 미류나무 그늘을 징검다리 처럼 쉬어 쉬어 책보를 메고 희희덕 거리던 녀석,

 

나는 학교 관사가 집이니 굳이 귀가의 수고로움을 겪지 않아도 됐었으나

학교 끝나고 일제히 땡볕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아이들이 부러워

종 종 이 녀석과의 동행 귀가를 하곤 했었다

 

세월 참 드으럽게 빨라서

국방부 의무 취업을 이행하고

직장을 구 하고

어찌 어찌 장가라는 걸 들어 지지고 볶고를 반복 하다가

이산 가족 상봉하듯 이 녀석을 만났다

이미 우리 나이는 삼십을 넘어 있었음에도 이누무시키는 어느 어느 산속 깊은 골짜기에서 젖통이 탱탱한 젖소 스무 넘어 마리를 끌어 안고는 봉두난발을 한 채 살아 가고 있었다 

 

"장가는 안가냐?"

 

"젖소들이 애인이고 마누라 라니까?"

 

"그럼 저 송아지 새끼덜이 네 새끼덜이냐?"

 

아들 여덟인 집구석의 끄트머리인 이 녀석의 어머니께서

"젖소를 죽이든지 나를 죽이든지..."의 사생 결단에 무릎을 꺾은 이 녀석은 소똥 치울 때 입던 작업복과 장화와 헤진 모자를 뒤집어 쓰고 서울 한복판까지 진출, 맞선을 보므로써 잠시 헤까닥 눈 뒤집어진 여자를 마누라로 삼았고

 

낭만은 무슨 낭만,

나날이 소똥에 쩔어 붙는 일에 낙망해 버린 마누라의

"젖소를 죽이든지 나를 죽이든지..."의 대를 이은 사생 결단에 다시 무릎을 꺾고 서울 살이를 시작 했었다

서울 응암동 이었는지

신혼 셋방을 찾아 간 나를 붙들고

"우리 쐬주 한잔 하자"의 의기투합으로 마누라 없이 연탄불 이글 거리는 목로집에서 안주감 곱창이 익기도 전에

 

젖소들과

산 바람과

어둠이 그립다고 꺼이 꺼이 울기 시작한 이노무시키 앞에서 나는 그저 거푸 술잔을 비워대는 수 밖에 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시골에 환장을 한 그노무시키를 제치고 먼저 이노미 강원도 산꼴짜기로 뛰어 들어 갔고 어느날 어떻게 어떻게 내 집을 찾아 온 이노무시키는 또 다시 넘의 땅을 복덕방 할배 처럼 둘러 보며 젖소 키울 궁리에 빠져 있었다

 

"우리 말야 이 담에 젖을 가지구 술을 만드는 걸 공동으로 연구 하며 살자..."

 

개시키...

또 젖소구만...

 

지난 봄엔 술 취한 밤에 개구리소리 하두 요란 하길래

손전화로 그 소리들을 건네주며 두노미 찔끔 찔끔 울기도 했었다

 

스멀 스멀

가을이 밀려드는 오늘 밤 쯤에

술 한잔 때리구 요노무시키나 울려야 겠다

 

"나 드디어 젖을 발효 시킨 술에 취했다 이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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