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하자면
이날껏 숨겨 온 강원도의 본성 쯤으로 이해해야 한다
휴일의 늦잠 끝에 일어나
조금 늦었다 싶은 아침을 먹고 뒷산에 올라 물통 손질을 마무리 할 때 부터 하늘은
된통의 눈을 뿌리기 시작 했었다
이 겨울 들어 땀 흘려 치워야 할 첫 눈,
쌓이는 눈의 량이 10센티미터를 넘을 무렵
이 눈을 창 밖으로 바라만 보는 건 눈에 대한 모독이다
그래서 어쩔건데?
뻘쭘함 속에 의심이 가득 담긴 아내를 꼬득이기 시작한다
기어이 이 눈을 치워야 할 것 아니냐
내 말은 내가 집에 있는 휴일에 이렇게 눈이 온다는 건 당신에겐 그야말로 축복인 셈 이다
그래서 어쩌라구?
어차피 때도 점심 때인 만큼 마당쇠의 사기앙양과 모처럼 쏟아지는 이 눈을 경배 할 겸
한잔 하자는 거지...
왼갖 아부와 아첨과 굴욕을 감수한 감언이설 끝에
그래도 다행스럽긴 하다
푸짐한 편육에 쐬주 한잔을 마실 수 있었으므로
그 술병 비워지도록
나는 눈에 대해 아낌 없는 애정과 찬사를 날렸고 흥건한 술 기운을 빌어 동요 몇 곡을 엉터리 기타 반주로
날렸고...날렸으며...날리다가...
속 으로는
어차피 혼자 치워야 할 눈, 아예 꼴까닥 해 넘어 갈 때 까지 쏟아져서
오늘은 치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려라...빌고 빌었건만
딱 술병 비워 질 무렵에 눈도 딱 그쳐 버림으로써
제기랄...
내용이 어찌 되었든 술 마셔 가면서는 기도라는 걸 해 봐야 말짱 황이 되는 거구나...
완전 무장하여 집 오름 길의 눈을 밀다가 쓸다가 눈 밭에 철푸덕 주저 앉아 쉬기도 하기를
무려 한 시간 넘어...
향자 할머니와
한솔 아버지와
저 아래 이씨 영감님과
순규 형님 등 등 등
겨울에 갇혀 있던 마을 사람 모두가 제 집 마당을 시작으로
밀다가 쓸다가 만나지는 곳
모두의 길이 되어 결국 하나의 우리로 살 수 밖에 없는
마을회관 공터 보다 훨씬 넓은
겨울 한 복판의 마당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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