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겨울 기억들

햇꿈둥지 2009. 1. 14. 10:25

 

 

 

 

#.  하나

달빛 흥겨워서

개 조차 콩 콩 짖는 춥고  마른 겨울 밤엔

시루떡 생각이 난다

 

달빛 별빛을 징검 징검 건너 뛰어

앞집 순자네

옆집 상열이네

뒷집 종구네

저 고샅 끄트머리 부터 수펑이 멀지 않은 창주네 집 까지를 

시루 떡 팥고물 같은 겨울 골목길을 종종 걸음으로 돌아치던 기억

 

빈한한 살림 이었지만

특별한 음식 어떤 것이든 모두에게 나눌 수 없으면 하지 않았었다지...

 

 

#.  두울

"사다리는 어디 있는지 알어?"

"덴찌에 불은 들어와?"

"사다리는 누가 잡고 새집에는 누가 올라 갈꺼여?"

 

은밀한 사냥

 

초가지붕 끄트머리 작은굴 속 참새집에 팔뚝을 넣으면

작고 따듯한 겨울의 심장이 손 끝에 잡혀 왔었다  

 

 

#.  셋

내 몸으로 이어지거나

내 몸에서 나뉘어진 뿌리 였었다

 

초저녘 청솔가지 불내음이 구들 가득 열기로 번지는 밤에

커다란 이불 하나 속으로

큰 놈 부터 막내 까지 주욱~ 다리 뻗어 누운 채

시린 외풍을 견디기 위해 이불깃을 당기면

고물 고물 더듬이 처럼 엉키어 감겨 오던

그 여리고 고운 다리들

 

 

#.  넷

마을 누군가가 돌아 가신 날 부터

마을 사람 모두는

이발도

면도도

머리를 감는 일도 하지 않았었다 

 

마을 사람 모두 상주가 되고

마을이 몽땅 빈소가 되는 것 이었다

 

공동체

 

 

#. 다섯

재티가 둥둥 뜨는 가마솥 더운 물을 바가지로 덜어내어

마당 끝에서 고양이 세수를 하는 동안

머리 깃을 적신 물들은 이내 고드름이 되었었고

신발 두짝이 몽땅 봉당 밖으로 던져지도록 마루로 뛰어 올라 방문 고리를 잡으면

악어의 이빨처럼 여린 손바닥을 물고 늘어지던 추위 

 

 

#. 여섯

밤새 쏟아지는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낮은 산골 마을이 울리도록 뚝 뚝 나뭇가지 부러지고

아침이면 시침 똑 뗀채 투명하게 푸른 하늘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도록 쌓이고도 현기증이 일도록 반짝이는 윤슬

 

푸르게 정지한 허공에

가느다란 철사줄을 휘두르면

쨍그랑~

깨어져 버릴 것 같던...

 

 

 

 

 

 

'소토골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날, 그리고 여전히 겨울  (0) 2009.01.27
눈 폭탄  (0) 2009.01.18
용을 쓴다  (0) 2009.01.13
바람이 길 있어 다니든가  (0) 2009.01.04
쌀알 한톨 만큼씩,  (0) 2008.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