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금족오(禁足午)

햇꿈둥지 2021. 7. 18. 05:09

 

 

#.

지젝의

"나날의 삶이 너무도 비참한 나머지

코로나 바이러스를 그나마 사소한 위협으로 여겨

모른 체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259쪽에 달하는 팬데믹의 사유들을 읽던 새벽,

 

#.

잠시 쪽잠이 들었었나?

창밖에 어른거리는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놀라 일어나 보니

앞 동네 베드로가 혼자 비닐하우스 일을 하고 있었다.

 

#.

남의 집 일을

내 집 일처럼 하는 것

깊은 병이다.

 

#.

그렇게 

새벽에 시작한 일은

정오가 되기 전 끝을 내야 한다.

온몸의 땀을 샘물로 씻고

초록 그늘 아래 산바람을 두르는 호사, 

 

#.

하여

이 땡볕 아래에서 살아남기 위한 계명으로

禁足午 하기로 한다.

 

#.

코로나가 창궐하는 도시에 갇혀 있던 아이들이

효행? 나들이를 했다.

 

#.

기꺼이

환호하여

온갖 수고를 감내하리니

해 넘어 남기 내릴 시간까지 깔깔대소,

 

#.

산 넘고 또 넘어 당도한 샘물이

아이의 텀벙 유희에 맑게 부서진다.

 

#.

다음 주에는

더욱 강한 폭염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엄포 관계없이

감자 캐낸 자리를 갈아

김장 씨앗 뿌릴 준비를 하고

틈새의 쉬는 시간에

코딱지 꽃밭을 건성건성 손질하거나,

 

#.

해 넘은 시간

중천에 걸린 반달,

칠월도 어느새 열이레의 날

 

#.

세월의 품에 안긴 더위와

더위의 등에 업힌 세월이

어울렁 더울렁 흘러가는 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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