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渡夏記

햇꿈둥지 2006. 8. 16. 08:38

                 

                                                                     [요건 나팔꽃]

 

                                      

                                                    [요거시는 더덕 꽃]

                                          

 

                                                           [또 요거시는 옥잠화]

 

폭염의 열기는 점령군 처럼 도시 가득 진주해 있었고

도시를 떠나지 못한 몇몇 사람만이 쇠잔한 저항군의 모습으로 건물의 그늘에 갇혀 있었다  

 

끊어진 병참선 처럼 바람 한 점 불어 오지 않는 산 속,

 

그늘 조차도

기진한 모습으로 해가 지기만을 목 빼어 기다리고 있었다

 

제 힘 만큼만 전기를 빨아 먹은 선풍기가 발악을 하며 맴을 돌아도

여전히 등 줄기를 흐르는 땀방울들

움직임은 곧 땀이 된다는 등식을 문신처럼 가슴에 새겨 넣고

괴질에 걸린 사람처럼

꼼짝없이 누워 있는 것 만이 더위를 이기는 전부였다 

 

에어콘을 한대 놓아 볼까?...이 산 중에?

냉장고 문짝을 떼어 내고 냉동실에 대갈통을 박아 버릴까?

아랫 집 뒷곁에 수직 동굴이 있다는데 로프를 메고 뛰어 들어 볼까?

시내 변두리에 있다는 냉동창고에 들어가서 여름이 끝날 때 까지 인질극을 벌여 볼까?

 

아무래도

눈 내리는 겨울이 되면

단 한번도 "춥다" 소리 하지 말고 알몸으로 견뎌봐야 할 것 같다

 

휴일 사이의 평일 하루를 징검다리 삼아 휴가를 왔던 아이들이 돌아 간단다

시원 섭섭한 중에도

개떡 같은 농사에

감자도 싸고

애호박도 싸고

풋고추도 싸서 봉지 봉지 건네 준다

 

"이건 무농약 농산물이 아니라 거의 자연산에 가까운 품질을 지닌 것이다...저 풀밭 속에서 주인인 나도 어렵게 찾아 낸 것 이므로..."

 

게을러 터진 농사에 대한 반성은 커녕

그러므로 훨씬 품질이 높은 것 이라는 궤변을 적당히 섞어 아이들 가방을 채워 주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떠나가고

 

뉘기의 노랫 가사 였는지

 

"하늘엔 한 점의 구름이 떠 가고 철뚝길 넘어 산을 넘는 들길엔 먼 기적 소리만 홀로 외로워도...어쩌구.,.."

 

이 노래를 느려 터지게 흥얼 거리며

그늘에서 담배 한대 피워 물었다

 

소나기가 오려는지

치악 능선 넘어로 먹구름이 몰려 오고 있다

 

여름이

그렇게

밀려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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