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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와 감자를 거두어
대처 살이의 형제들
그리고
아이들과의 나눔은 흡족하고 넉넉해서
어줍잖은 농사일이나마 잠시 우쭐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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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나는 일은
장마의 힘을 빌어 마음대로 자란 풀들의 정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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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급한 체력의 한계선을 무시한 결과로
이곳 저곳 병원을 돌아치는
계획에 없던 애먼 일들로 힘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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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일도하사불성의 결기는
정신일도인사불성의 결과를 빚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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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놓쳐 억세어진 옥수수 알갱이를
손 부르트도록 떼어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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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을 돌려
거친 밥을 지어 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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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세상이 되기 이전,
산골 집집마다의 남루한 밥상에는
거친 밥사발들이 공손히 차려졌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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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흑백의 기억들이 더운 김으로 오르는
빈한한 밥상 앞에 앉아 보고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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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감자를 거두어 비어진 자리에 무 씨를 넣고
이런 저런 김장 소채들을 뿌려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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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여전히
봄 부터 엄정한 사계로 운행 되고 있건만
산골짜기 들어 사는 마음엔
더운 여름과 날 선 겨울만 대별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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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밤 뜨락에 반딪불이 명멸하고
섬돌 틈새 낭낭한 풀벌레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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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는
본디의 제 뜻에 더 해
여름과 가을의 분명한 구별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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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깃 단단히 여며
서툰 가을빛에
함부로 가슴 속살을 베이지는 말아야한다고
다짐에 다짐은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