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소토산방

햇꿈둥지 2009. 6. 16. 18:46

 

 

 

 

#. 

바람이나 지나다니는 산 속 푸른 공간을

뚝딱 자르고 기워서 흙집 하나를 어린 뒤

대들보 상량글은 그저 매일 철딱서니 없이 새 꿈이나 꾸며 살자고 "햇꿈둥지"라고 써 넣었다

 

너른 터전 이라고는 여인네 치맛자락 만큼도 안돼 보이는 치악의 늑골마다

외랑골 이거나

웃새골

벗나무떼기 등 등의 이름이 있었고 우리가 들어 앉은 골짜기는 소토골 이었다

왜 소토골이 되었는지 연세 드신 어르신마다 여쭈어는 보았으나 딱 부러지는 답이 없어

어느 술 취한 저녘에 열심히 흙이나 파 헤치며 살자고

근면할 소에 흙 토로 명명해 버렸는데

흙은 무슨...

이때쯤 부터 초록 공룡 처럼 덩치를 키우는 풀들에 치어 죽는 상황이 날마다 날마다

이어지고 있다는 것

 

#.

더럽게도 사무실의 상용 메일은 차단 되어 버렸고

집에서 쓰는 컴퓨터 마져 꼴까닥 숨을 놓아 버려서 차일 피일 하루 이틀...

넘다가 가다가 겨우 겨우 접속을 해 보니 세상에

백건이 넘게 적치되어 있는 메일 메일 메일들...

그 쓸데없는 인연 이거나 일들에 팔려 허수아비 놀음을 했었구나

 

#.

한 마을에서 야박하게 거절 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종구씨에겐 오르 내리기도 가꾸기도 시원찮은 밭뙈기를 맡겨 여벌 일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올해도 그저 파적으로 무우 씨를 넣었고

그놈들 예쁜 떡잎이 허공으로 빼꼼히 솟을 무렵,

원주 일대에 난데없는 우박 공습이 있었다 그 결과는 너무 참담해서 이제 막 가지벌기를 시작한 고추며 본잎을 너울거리던 배추 할 것 없이 삼십여분의 시간 동안 그야말로 초토화 되어 버렸는데 이 무슨 묘한 일인지 소토골에는 한톨의 우박도 내리지 않아 그의 예쁜 무우들은 싱싱 푸르딩딩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 

어제,

종구씨는 밭둘레에 고라니 방지용 펜스를 둘러 놓았다

여벌의 밭뙈기에 주력 할 수 밖에 없는 그의 딱한 상황...

 

언제

우박처럼 얼음 갈아 넣은 씨원한 쐬주나 한잔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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