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게으름의 미학

햇꿈둥지 2009. 6. 29. 08:53

 

 

 

 

#.

마당이며 밭둑에 얼키고 설키운 풀들과

이젠 풀들에 치여 어디 박혀 있는지 조차 모르는 마늘과

줄을 매어 주지 않은 고추밭과

엉덩이 무거운 훈련병 처럼 여전히 땅바닥 위를 기어 다니고 있는 오이넝쿨과

장마를 코 앞에 두고도 손질이 되지 않은 채 버려진 물고랑과

어깨 위에 잔뜩 올려 있는 일들을 유기한 채 자주 술을 마시며 자문했다

 

어떻게 이렇게 죽기 살기로 살아야 하는 걸까?

평생을 단위로 하는 삶이 아닌

일주일

아니면 한달쯤을 단위로 하는 삶은 불가능 한 걸까?

 

말 하자면

일주일 벌어 고거 떨어질 때 까지 빈둥거리거나 

한달 벌어 고거 떨어질 때 까지 빈둥거리거나...

 

지금 우리의 삶이 잘못된 주술에 의한 의식적 족쇄로 작용 하고 있는 것 이라고

개떡 같기는 하겠으나 최소한의 논리적 범주에서 타당하게 설명 될 수 있는 거라면 위의 상상이 잘못된 것 만은 아니라고...(지금은 술 깼다...)

 

#.

빈둥거리기 위해

왼갖 일거리를 밭고랑에 패대기치고

황둔을 넘어 서마니 강을 따라...따라...흘러 가다가

 

주천 쯤에서 만났다

 

두마리 연꽃...

 

#.

염탐처럼

밭고랑 끄트머리를 조심스럽게 열어 감자 다섯알을 꺼내 들었다

초록 잎들을 스카이라이프 안테나 처럼 허공으로 펼쳐

유월이 다 차도록 거두어 들인 햇살들을 채곡채곡 땅 속으로 쌓아

감자는 제 모양 제 빛으로 숨죽여 있었고

물과 불로 익어진 뒤에 다시 살아나듯 피어난 뽀오얀 전분의 입술들...

 

황홀한 맛에 진저리 쳤다

 

#.

농기계 사고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의 무시로 일어나는 것 같다 

아무 이유 없이

돌기를 거부하는 분무기 모터...

 

벨트를 벗기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모터와 분무기 회전축 정렬이 되지 않았던 것,

 

회전 자체가 부하로 작용 하고 있었으니...

 

#.

새볔

비 오시는 소리에 잠이 깼다

 

님이 오시거나

아니면

님이 가시거나

 

그러나 또

손잡아 맞아 들이지 못하는 내님은

비의 나그네 였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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