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治圃로 이름 했으되 내 노력외의 얻음이 더 많으니
得圃...가 맞을성 싶다
말 하자면
봄이 당도하기 전 부터 밭에는 냉이와 쑥이 지천 이었고
그 고운 흙을 갈아
마늘과 감자와 무우 등을 심어 키우는 동안 주변으로는 온통 싱싱한 먹을거리들이 넘쳐 났고
이제는 씨 뿌린 것 외의 얻음이 더 많으니
농사일 힘겹다는 엄살은 가당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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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가 불 밝혀 익어가고
오동통 살 오른 자두가 붉은 태양을 끌어 안을 태세이고
주변의 산딸기는 화수분으로 넘쳐나는데
초저녘 어스름 빛으로 익어 버린 산뽕나무 오디가 스스로 진다기에
나무 밑에 그물 하나 넓게 펼쳤다
그물 가득 얹힌 녀석들을 저녘마다 거두기만 하면 되는 일,
그늘조차 부드러우니 자리 깔고 누워 세월의 앙가슴이나 물고 늘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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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렡 흰 꽃 사이로
우뚝 솟은 장미 한송이 붉게도 피었다
봄 부터 피고 지는 모든 꽃들은
젓가슴을 풀어 헤친 화냥기 속에서
벌과
나비와 맘껏 희희덕 거려서
꽃진 자리
앵두가 되고
자두가 되고
유월의 농 익은 초록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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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가
무지무지하게 많이 달리는 바람에
가지를 통째로 흔들어 삐리삐리 성의없이 매달린 녀석들을 솎아 냈음에도
나뭇가지가 부러질듯 휘어져서
줄로 묶어 당겨 주고 지지목을 세워 주어야 했다
수박이 나무에 달리지 않는 건
참 다행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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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볔시장에서 변화로 느껴지는 반가운 먹을거리들을 만났다
배추며 열무 잎에 벌레 먹은 자국이 선명한데 그것들이 팔리고 있었다
"이젠 벌레 먹은 것도 이렇게 팔리네요"
할머니의 대답은 이랬다
"벌레 먹은 놈이 아니라 우박 먹은 놈 이라우..."
그랬구나...
한 열흘전 쯤
원주 일대에 비닐하우스를 구멍 낼 만한 크기의 우박이 쏟아졌고
이제 막 본잎을 올려 왕성하게 자라기시작한 옥수수거나 배추 무우 등속은 물론
실하게 가지 치기를 시작한 고추까지...
종구씨의 표현으로는 "폐농 지경으로 아작이 났다"는 거였다
그런데 묘 하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골짜기에는 우박이 내리지 않아
그저 한마을 사는 정으로
여벌 삼아 갈고 심었던 그의 예쁜 무우들은 건재 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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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새볔,
상원사 물길 따라 산길을 걸었다
무위자연은 폐기된 채
유위자연만 널부러져서
초록 하나로도 그윽했을 풀섶에
사람의 간판
사람의 유혹
사람의 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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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의 세상 속에서 "생산"이란 다분히 생명을 도외시한 물량 위주의
비인간 비자연적 용어로 변질되어 버렸다
불안한 견피 속에서의 묵언 수행을 마친 뒤
넓고 싱싱한 초록 잎이 되고도
허공 속에 향기 짙은 꽃을 피울 줄 아는 저 생명들...
작은 우주 한알을 다시 꽁 꽁 가두어
더러는
생명의 먹이로 순환 되어지는 거룩한 순교
농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