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문명의 농락

햇꿈둥지 2008. 5. 13. 11:41

 

 

#. 네비게이션의 문제

장모님 기고라고 했다

시골살이 십여년이 넘는 동안 도시에는 알수 없는 길들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길들은 몽땅  얼키고 설키운 차량들로  하지정맥류 환자의 핏줄처럼 부푼 채

오도가도 못하는 수 많은 차들이 외통수에 걸려 있었다

그 길을 피해 본다고

조금 더 수월한 길을 찾아 보겠다고 거금을 들여 마련한 네비게이션은

환장 하게도 숨 막히는 도시를 관통하는 길로 나를 끌어 들였다

C發...

 

#.

목줄을 옭아 죄는 것 같은 도심을 피하기 위해 순환도로를 찾았건만

이 우라질노무 네비게이션은

사직터널을 지나 광화문을 지나는

아주 서울 한복판으로 나를 끌어 들였고

이노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기계를 창밖으로 패대기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내 옆에서

마누라는

"도대체 단발머리 시절 고등학교를 몇년만에 지나느냐?"고 수학여행 가는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궁합 하구는...

 

#.

"한 시간 뒤 쯤이면 도착 할 것 같습니다"

태능을 지나며 축령산의 소호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고

구리를 지나 호평을 지날 무렵부터 종종걸음이 토끼 걸음으로...아예 멈추어 있는 시간이 길어 지다가...

그노무 새로 만들었다는 전용 도로는 주차 전용 도로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길에서 보낸 시간이 무려 세시간...

 

빠르게

편하게...를 위해서 떼돈 들여 사 들인 차에 묶여 몸부림을 치며 사는 사람들

 

문명의 농락이다

 

#.

"모처럼 만남에 하룻밤 자고 가는게 예의 아니겠느냐?"는 두분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어 선 시간이 거의 자정 무렵

가평을 지나 대성리를 지나는 동안

팔다리 미끈한 아이들은 여전히 길가를 오가며 함부로 떠들거나

함부로 마시거나

더러는 폭죽이 하늘 가운데로 들어 박혀 산산조각이 나기도 하는 미친 거리

 

귀가가 아닌

탈출 이었다

 

#.

다시 산 속,

비로소

콧구멍 두개와 귓구멍 두개와 눈구멍 두개가 신토불이의 섭생 시스템을 가동하기 시작 했고

도시를 맴도는 내 내 점 점 커지던 가슴 구멍은 메워 졌는데

해넘이 무렵부터 비가 오기 시작 했으므로

낙수지는 창가에 매달려 독작의 술잔을 기울였다는 것

 

가끔씩 추녀 끝 둥지에 알을 품는 산새가 날아 들었다는 것

 

막연 하지만

삶의 질 이란

뺀도롬한 외제 차를 가졌으되 밀려 터지는 길 위 에서의 몸부림으로 해결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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