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떼벼락

햇꿈둥지 2010. 1. 11. 08:16

 

 

#.

유학 중에

2주쯤의 귀국 틈새를 빌어 벼락결혼식을 해야 한다는 조카녀석 일로

서울 나들이 일박 이일 동안

소토골 산골짜기에는 얽히고 설켜 난마 같은 떼벼락 일들이 겹쳐 있었다

 

강아지 밥을 주겠노라 홀로 산중 누옥에 올랐던 한솔 엄마는

전화기 넘어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낙망적인 소식을 알려 왔고

 

십년 전 쯤의 힘겨웠던 비상 급수 방법에 골몰하여 집에 도착한 시간,

 

 

 

#.

물이 나오지 않는 원인 점검 결과

책을 쌓아 놓은 방의 바닥 배관 어디가 얼어 터진듯...

현관 앞 조차 흥건히 젖어 있고도 보온이 시원찮은 외화장실 수도꼭지도 동파 되어 물줄기를 뿜고 있었다.

 

다행히 뿜어 쏟아지던 물줄기들이 빈항아리를 가득 채워 놓은 것,

당분간의 용수 해결은 되겠거니...낙망 중의 안도에 헛 웃음이 나온다

 

우선의 급선무는 눈 쌓인 길을 열고 차를 올리는 일 이었다

밀고 쓸고...

 

세상의 탯줄 같은 저 길을 여는 동안

온 몸에선 무럭무럭 김이 솟을 만큼 땀이 흘렀고

"먹을 물 조차 없으니..." 눈을 치우는 동안 끌어 안고 있었던 막걸리병은

상황이 그러한 만큼

평소에는 늘 제동을 걸기 일쑤이던 아내조차

이 아닌 대체음용수로써의 긍정적 묵인이 고마웠던 한나절,

 

 

 

#.

어찌 됐거나

장 장 세시간의 노고 끝에 차들은 겨우 제자리를 찾았으나

 

얼어 터진 수도꼭지를 떼어내고 그 자리를 막아내는 일,

바닥 배관이 터진 책방은 미봉책으로 급수관을 막아 버리고

어쩌자고

이런 날 난로마져 연통이 막혀 불을 땔 수 없으니...

 

열리고 터진 부분을 막고

막힌 곳은 뚫고

수도 꼭지를 새로이 교체하고

눈 길을 열고

추위로 꼼짝도 않는 찦의 등을 두드려 깨워 시동을 걸고...

치악산 신령님께서도 혀를 내두르며 감탄 할 만큼의 variety solver...

 

 

 

#.

길이 없어도

그리하여 바퀴 따위가 없어도

아무 흔들림 없이 살아내고 있는 자연은, 산 속 따듯한 짐승들은

이 추위에도 결코 지름 길을 만드는 일 없이 정연한 걸음걸이를 남겨 놓았다

 

그 정직한 행선지...

 

 

 

#.

투명한 별빛이 주렁주렁 고드름을 만드는 새볔에

삼월이는 여섯마리의 새끼들을 낳았다.

 

물이야 나오거나 말거나 신이 난 아내는 미역국을 끓이고 푸줏간으로 내 달아 돼지족발을 사 온다 보온용 전구를 밝혀 준다 난리통...

 

10여일 뒤면 별빛 담은 눈망울들을 보게 될 것,

 

 

 

 

 

 

#.

무려 5톤 용량의 집수정이 하룻밤새 바닥을 보였는데도

다행스럽게 샘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는 얼지 않았음에 안도하고 감사한 마음

옹송옹송

콩닥콩닥

이 일 저 일 왼갖 사람살이로 종종걸음을 치던 산 속,

 

앞산은 여전히 의연하다.

 

그러므로

나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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