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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 처럼 뽀오얗게 자란 아이가 신부가 된단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아버지
푸르게 젊은시절
철딱서니 팽개치고 함께 술집 찾아 헤메던 친구의 등이 구부정 하다
나무의 마른 잎이 거두어지고
연록의 새순이 돋는 계절
가고 오고
오고 가는 것이 순리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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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여전히 마천루 같은 아파트에 둥지를 틀고 있었고 수직 이동에 적응하여 나 처럼 더듬 거리지 않고 엘리베이터며 에스컬레이터를 잘 쓸 줄 아는 사람으로 진화해 있었다
10층 넘게 올라야 하는 엘리베이터 앞에 장사진의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안을 채울 때쯤 모두의 시선은 사람을 피해 엘리베이터 벽에 붙어 있는 안내판에 고정 되기 시작했다
"허용중량 500킬로그램"
몇명이 탔나...보다는
저 사람은 몇킬로그램쯤 될까?...의 사람이 무시된
무게들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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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휴게소 앞에 이른 관광버스가 한떼의 사람들을 토해 내고 있었다
호미며 괭이를 쥐고 봄볕 그을었던 손등에 이름 보드라운 크림을 바르고
거울의 먼지를 털어내고 맆스틱을 바른 뒤에
장롱 깊이 넣어 두었던 고운 입성을 떨쳐 입은 일군의 하객들이 자판기 앞에 왁자하다
도시락 삼아 실었던 쐬주 몇잔에 얼큰하신 아저씨 한분
허리띠 대신 붉은 색 넥타이 질끈 동여 매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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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친구들의 "한잔 더..."를 완강히 뿌리치고 도시 탈출에 성공하여 소토골에 이른 시간이 오후 네시경
뜨락엔 알록달록한 꽃빛 요란하고도 현기증이 일만큼 향기 가득해서
양복에 넥타이 풀어 헤치고 뒷밭에 올라 배추 씨앗을 뿌렸다
내일쯤
음향에 조명 효과 까지를 얹어 비 오신다 하니...
비 오신다 하여 겨우 우산을 준비 할 뿐인 도시 사람들
씨앗 넣은 뒤에 수혈 같은 비 오시는 그 기쁨을 아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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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부터 온몸에 붙어 떨어질 줄을 모르는 근육통들
돌짝을 들어 옮길 때의 통증은 허리에 붙어 있고
밭고랑 삽질의 통증은 어깨와 팔뚝지에 붙어 있고
쪼그림 걸음으로 씨앗을 넣을 때의 통증은 허벅지와 장딴지에 붙어 있어서
한주를 시작하는 첫날 부터 구부정 골 골 골 골...하다가...하다가...
어찌하여 이노무 통증들은 목요일 쯤이면 몽땅 떨어져 버려서
다시 또
토요일 이면
돌짝 들어 옮기고
밭고랑 삽질에 씨앗 넣느라고 쥐랄을 하게 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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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여덟해 째 이신 김씨영감님께서
도시로 되돌아 가신다 했다
외로워서...
현대의 외로움이란 로빈슨크루소 처럼 외딴 섬에서 느끼는게 아닌
사람 번잡한 무리 속에서 느껴지는 건 아닐까?
그 연세에 고민없이 결정 하신 일은 아닐테지만
"도중하차전도무효..."
시골 완행버스표에 적힌 짧은 글이 문득 큰 글씨로 생각나는
봄빛 낭자한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