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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반딪불이 한마리 공손하게 손 잡아 맞았습니다
빛이되 아무 온기 없는 청정함
그 연한 불빛으로
가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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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병원을 다녀 온 사이
치악 뜨락에는 가을 기별이 당도해 있어서
바람은 훨씬 명랑해지고
어둠 깊이에서 한숨처럼 쏟아지는 풀벌레 소리 하고도
아득한 어둠 속 요정 같은 반딪불이
유령처럼 밤 뜨락에 나 앉아 철없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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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심근경색...이라고 남의 죽을 뻔했던 사정쯤을 개떡도 아닌 일로 치부해 버린 앞 병상 아저씨는
부정맥을 기본기로 갖추고
관상동맥 스텐트 다섯개에 더해
옵션으로 제세동기를 탑재 하신 뒤에도
뇌경색으로 뇌동맥 수술의 내공을 갖추신 그야말로 심장질환의 절대고수를 뵙고 왔지요
넙죽 엎드려
공손하게 전화번호 아뢰옵고 장차 싸부님으로 모실 것을 거듭 약속 하는 자리,
그 옆에 옆에 아저씨의 추임새로 친목계 하나 묶었습니다
골골백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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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죽은 뒤에 사리는 몰라도 금속코일 네개는 분명히 나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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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신청한 전기 휀스를 설치 하겠노라고 한나절 땀 흘리신 두분,
- 짐승 피해를 막아야 할 작물은 어디 있느냐?..는 말씀에
곧 심을 것 이라는 뻘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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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심했다 싶을 만큼 뜨락의 나무가지들을 잘라 주었습니다
이발하듯 나무의 잔가지들을 잘라 주던 방식이 아니라 아예 분재형 가지치기를 해 버려서
나뭇가지에 묻혀 있던 석축의 속살이 훤히 드러나 버렸습니다
더북했던 여름이 한짐 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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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넘이 부터
소매 긴 옷을 입어야 합니다
가을...
사실 이때부터
여름의 꼬리와 가을의 머리에 겨울의 한숨이 어수선하게 혼재된
산골짜기 특유의 계절이 시작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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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복숭아 한보따리로 효소를 담궜습니다
내년 봄 부터
지난 여름 햇빛과 바람의 얘기들을 한모금씩 마시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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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내 열어 두었던 창문을 꼭 꼭 여미었습니다
바람 보다는
그리움 이란 놈이 들어서지 못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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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노을빛 단풍이 번지기 시작하면
가슴조차 알록달록 물 들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