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결국 가을,

햇꿈둥지 2012. 8. 20. 16:09

 

 

먼 도시 성당 안에서 진행되던 결혼식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미사 예식에 지쳐

살금 걸음으로 빠져 나오며 말씀 드리기를

 

하느님

관절이 예전 같지 않사옵니다~

 

아무도 술병의 뚜껑을 따지 않았다

 

그 대신

마주앉은 마나님들의 눈치를 살피거나

아니면

손전화 가득 담긴 손주 사진과 얘기가 장황 하거나...

 

가여워라

남자의 말년이여~

 

도시를 탈출하여 다시 도착한 치악 뜨락

명징한 풀벌레 소리들...

 

밀림을 연상케 하는 풀밭을 헤쳐 감자를 캤다

 

유기농이고 지랄이고 따질 것 없는

게으름 끝의

순, 진짜, 참, 원조 자연산,

 

실한 고추를 거두는 동안

비닐하우스 지붕을 함부로 두드리며 쏟아지는 거친 비,

 

이노무 고추

말리기는 누가?

어떻게?

 

하우스 주변 풀들을 베는 사이

오락가락 하던 비

 

온 몸을 적시며 흐르는 땀 조차 감당이 되지 않으니

굳이 비를 피할까?

 

땀과 비를 샘물로 씻으며

거듭 행복해지고 있었다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중,

 

지친 몸을 뉘인 너른 창가 틈새로 

포동한 귀뚜라미 소리

 

그리하여

결국 가을...

 

왜 덜컥

서러워지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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