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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도시 성당 안에서 진행되던 결혼식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미사 예식에 지쳐
살금 걸음으로 빠져 나오며 말씀 드리기를
하느님
관절이 예전 같지 않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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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술병의 뚜껑을 따지 않았다
그 대신
마주앉은 마나님들의 눈치를 살피거나
아니면
손전화 가득 담긴 손주 사진과 얘기가 장황 하거나...
가여워라
남자의 말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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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탈출하여 다시 도착한 치악 뜨락
명징한 풀벌레 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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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을 연상케 하는 풀밭을 헤쳐 감자를 캤다
유기농이고 지랄이고 따질 것 없는
게으름 끝의
순, 진짜, 참, 원조 자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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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한 고추를 거두는 동안
비닐하우스 지붕을 함부로 두드리며 쏟아지는 거친 비,
이노무 고추
말리기는 누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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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주변 풀들을 베는 사이
오락가락 하던 비
온 몸을 적시며 흐르는 땀 조차 감당이 되지 않으니
굳이 비를 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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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과 비를 샘물로 씻으며
거듭 행복해지고 있었다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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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몸을 뉘인 너른 창가 틈새로
포동한 귀뚜라미 소리
그리하여
결국 가을...
왜 덜컥
서러워지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