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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갈색으로 난장을 일구던 바람이
연두빛으로 변심을 하더니만
부드럽기가 비단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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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도
집도
산도
꼼짝않고 정지해 있어서
내려다 보면 그저 아득할 뿐,
마을회관의 남루한 깃발 몇 개가
유일한 동사로 펄럭이는데
돌아가신 박씨 영감님께선
무얼 그렇게 하염없이 쳐다보고 계셨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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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잠시
마당가 햇볕 자락에 앉아 마을 길을 내려다 보다가
아하~
박씨 영감님 께선
현재의 일들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 밭과
그 길과
그 산에 새겨진 당신의 옛일들을
되새김 처럼 아주 천천히 되돌아 보고 계셨던 것 임을 깨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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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의 적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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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할 것도
들을 것도 없이
산 중에 갇혀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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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석달 열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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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
꽃이 피었던 자리마다
새 잎이 제법 장하게 넓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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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오래 전에 죽은 이들의 손을 잡고
이승의 일들을 고자질하다가
맑은 새 소리에 깨어난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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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둑한 저만큼 앞에
오늘을 기적으로 받아든 또 한사람이
유령처럼 걷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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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아프고
세월이 아픈
불가사의한 고통들을 내 안에 끌어 안아
이치의 자폐를
스스로 치유해 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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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울어가는
하현의 초승달이
서산 눈섶으로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