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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같기도 하고 겨울 같기도 한
11월 서른날이 헐러덩 비워진 자리에
변심한 애인의 손길 같은 겨울이 빼꼼 들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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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열고 사람이 들어서기 보다
틈새로 바람이 더 많이 드나드는 허술한 문 밖에
낯선 12월이 옹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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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당 붓글씨 놀음 1년을 마감하여
작품 전시회를 준비한다
글 솜씨야 우얬든동
표구 마다 묵향 가득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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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동안 뭣을 할꼬? 궁리 끝에
연탄 난로 위에
김치 담긴 도시락을 뎁혀 먹어도 좋다는 서실 하나 찾았다
주도야산(晝都夜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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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끝머리
고춧대에 매달려 있던 고추를 거두어 비닐망 속에 덮어 두었다가
뒤늦게 건조기로 말린다
철 모르는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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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팔을 휘젖고 걷기 보다는
굽어가는 허리로 뒷짐 지은 자세가 더 잘 어울리는 친구 만나
시장 목로에서 뜨끈한 국밥 한그릇 먹었다
더운 김으로
마주앉은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으니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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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 가는 그를 만나면
손 보다 먼저 연민이 팔 벌려 끌어 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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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통째로 동해안 관광을 떠나 텅빈 마을에
성능 좋은 스피커를 장착한 행상 트럭이 들어와
- 갓 잡아 두눈 말똥한 고등어 사려
- 뜨끈 뜨끈한 두부도 있어요
- 콩나물 숙주도 있어요
-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어요...
해도
내다 보는 사람 하나 없는 고요한 산마을,
한참을 맴돌며 떠들던 스피커에서 한숨 섞인 소리가 새어나왔다
- C8 다 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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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어금니에 치통 한무더기가 매달려서
잠길을 뒤 흔들었으므로
한 밤중에 홀로 깨어 타이레놀 한 뿌리 푹 삶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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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2월,
마지막 잎새 같은 달력 속에
대설과 동지가 차갑게 엎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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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쫄지 마시고
첫사랑 처럼 따땃 포근한 날들 되시라고
두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