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12월의 안부

햇꿈둥지 2018. 12. 1. 07:51






#.

가을 같기도 하고 겨울 같기도 한

11월 서른날이 헐러덩 비워진 자리에

변심한 애인의 손길 같은 겨울이 빼꼼 들어 앉아 있었다.


#.

문 열고 사람이 들어서기 보다

틈새로 바람이 더 많이 드나드는 허술한 문 밖에

낯선 12월이 옹크리고 있다.


#.

선무당 붓글씨 놀음 1년을 마감하여

작품 전시회를 준비한다

글 솜씨야 우얬든동

표구 마다 묵향 가득하니,


#.

겨울동안 뭣을 할꼬? 궁리 끝에

연탄 난로 위에

김치 담긴 도시락을 뎁혀 먹어도 좋다는 서실 하나 찾았다

주도야산(晝都夜山),


#.

가을 끝머리

고춧대에 매달려 있던 고추를 거두어 비닐망 속에 덮어 두었다가

뒤늦게 건조기로 말린다

철 모르는 농사꾼,


#.

두팔을 휘젖고 걷기 보다는

굽어가는 허리로 뒷짐 지은 자세가 더 잘 어울리는 친구 만나

시장 목로에서 뜨끈한 국밥 한그릇 먹었다

더운 김으로

마주앉은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으니 다행스럽다.


#.

늙어 가는 그를 만나면

손 보다 먼저 연민이 팔 벌려 끌어 안게 된다.


#.

하필이면

통째로 동해안 관광을 떠나 텅빈 마을에

성능 좋은 스피커를 장착한 행상 트럭이 들어와

- 갓 잡아 두눈 말똥한 고등어 사려

- 뜨끈 뜨끈한 두부도 있어요

- 콩나물 숙주도 있어요

-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어요...

해도

내다 보는 사람 하나 없는 고요한 산마을,

한참을 맴돌며 떠들던 스피커에서 한숨 섞인 소리가 새어나왔다

- C8 다 죽었나...


#.

망가진 어금니에 치통 한무더기가 매달려서

잠길을 뒤 흔들었으므로

한 밤중에 홀로 깨어 타이레놀 한 뿌리 푹 삶아 먹었다.


#.

이제 12월,

마지막 잎새 같은 달력 속에

대설과 동지가 차갑게 엎드려 있다.


#.

부디 쫄지 마시고

첫사랑 처럼 따땃 포근한 날들 되시라고

두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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