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첫 눈

햇꿈둥지 2018. 11. 21. 17:28






#.

한 일주일 전 부터

바른쪽 발목이 붓고 아프기 시작했다

즤까짓게 아플만큼 아프다 말겠지... 했는데

말겠지가 아니라 계속 계속 아팠으므로 세번쯤 결심을 굳힌 끝에 병원엘 갔다

부위가 발목인 만큼 병원 가기 전에 목욕탕을 먼저 가서

발 냄새 제거를 위해 스물하고도 다섯번 넘도록

발 때를 벗겨내기 위해 이백 하고도 오십번쯤 넘도록

때 타올로 문질러 댔다

족발 손질 하는 족발집 아저씨 처럼 온 정성을 다해 씻고 또 씻은 뒤에

예의 바르게 의사를 만났고

만져 보고 쭈물러 보던 의사는

요산수치검사를 하고 엑스레이 수십장쯤 찍었으나

뼈는 물론 인대도 고래 심줄 보다 튼튼하여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거였다.

하여

뜨거운 찜질 고문 300시간에 전기 고문 같은 저주파 치료를 병행한 뒤에

병원 밖으로 나와

가을볕 같기도 하고 겨울볕 같기도 한 햇살 아래를

살짝 쩔룩 쩔룩 걸으며 생각해 보니

아~! 맞다

지난 주 어느날 옆산 자작나무 하나 베러 올라 갔다가 나뭇둥치에 걸려 삐끗 했었구나...제기럴~

이 사건과 관련한 모든이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고 싶으다.


#.

마당 잔디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죽을똥 살똥 가꾸고 지켜내던 잔디밭은

처음에는 아내가 심어 놓은 마가렛이 기웃 기웃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하더니

뒤 이어 망초

토끼풀

씀바귀

조뱅이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쑥,

이노무 쑥이 들어와 쑥 쑥 자라고 퍼지기 시작하더니 아주 간단하게 쑥밭이 되고 말았다

그런 어느날 아내는

모두 벗겨내고 다시 잔디를 입히자는 거였다

물론 아내는 생각만 하면 되는거였고 그 생각대로 움직이며 땀 흘리는 몫은 마당쇠인 내 일이 되는 거였다

그리하여 떼를 사는 돈으로 우주 개발비와 맞먹는 금액의 돈을 받았으나

나는 그 돈으로 과감히 고출력 FM라디오를 하나 샀다.

첩첩산꼬댕이 전파가 시원찮아 늘 포기해야 했던 FM 전파가 맑고도 푸르게 수신 되었다.

떼돈을 들여 장만했기 때문이다

마침 음악은 Que sera sera가 나오고 있었다

뭐 꼭 잔디 있어야 마당이겠는가?...


#. 

일년에 한번쯤 메주콩을 삶을 때 쓰거나

처가 식구들 중 신발 있는 사람들 모두 모이는 날 소머리를 삶을 때 한번쯤 쓰는

가마솥 두개가 걸려 있는 창고 옆 부분의 선반이 낡고 삭아 부서지기 일보 직전 이었다

몽땅 들어내고 왔다 갔다 일을 하는 동안

산골 갈기세운 바람이 마당의 낙엽을 모아 아무렇게나 난장을 치며 뒹굴고


#.

이제 사방 어디에도 눈 맞출 꽃한송이 남아 있지 않은

삭막한 11월

보리수 나무 잎들은 안간힘으로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

입똥은 일치감치 지나 버렸고

이제 내일이면 소설,

마침 눈이 온다고 티비는 몇일전 부터 입방정을 늘어 놓았으므로

오늘 문득

작은 도시의 거리는 회색빛으로 낮게 엎드렸으며

골목에서 마주친 할아버지의 겨드랑이에는 어느새 달력 하나 동그랗게 끼워져 있었으므로

11월도 벌써 스므날

약간 쌀쌀하여 외롭고 쓸쓸하기에도 딱 좋은 날,


#.

붕어빵 세마리 샀다

저녁에 매운탕 끓여야겠다.


#.

하늘이 점점점점 더 낮아지더니

낮 동안의 비가 눈으로 바뀌어 내리기 시작 했으므로

눈송이들 사뿐 사뿐 지상으로 내리는 시간

아궁이 가득 불 넣어 흰연기를 펑 펑 하늘로 피워 올린 뒤


#.

백만송이

천만송이

첫 눈을 기념하여

플라스틱 삽과

비료푸대와

막대기 두개를 준비하여 눈썰매 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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