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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그래도 열무김치

햇꿈둥지 2020. 6. 25. 06:05

 

 

 

#.

분명히 열무라고 뿌린 씨앗은 여름 무였다

열무라고

열무라고

열 번도 넘게 고집을 부리다가

열무보다 훨씬 곧고 억세게 뻗는 줄기를 본 다음에야

슬그머니 고집을 거두었다.

 

#.

거둔 고집의 대가는

한 바구니가 넘는 무를 다듬는 노고로 면책되었다

 

#.

그렇게 거두어진 것들이

얼렁뚱땅 얼버무린 김치가 되었는데

열무처럼 나긋하지는 않지만

농익은 여름의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

그 김치 어금어금 씹으며

속으로만 되뇌이기를

그래도 열무김치,

 

#.

종일토록 비 오시니

모처럼

아랫집 영감님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겠다.

 

#.

수술한 귀는 여전히 시원찮아서

이렇게 저렇게 병원 출입만 뻔찔하게 되었는데

문득 전화,

더러의 친구들이 병원에 있거나

몇몇은 장차 아프기로 예약되어 있다는 소식들,

 

#.

우리 이제

늙음조차 지나 낡음의 경지에 이르렀나 보다

 

#.

뜨락 도자 장승 속에서 자라던

곤줄박이 여섯 아이는 창공을 향해 떠났다

 

#.

하도 더워서

딸과 며느리에게

팥빙수 한 그릇씩 보냈다

 

#.

손가락 몇 번 까딱했더니

카톡 하고 날아갔다

 

#.

현관 방충 문을 만들던 한나절의 노고는

몽땅 땀띠로 솟아서

할 수 없이 피부과

처방 외의 권고 사항 중에

자주 찬물로 씻어줄 것, 이 있음으로

자주 씻기 쉽도록 반 벌거숭이 놀이 중, 

 

#.

산새들 소리만 분분한 산 중에

더운 한 철의 자유,

 

#.

하지가 지났다

다시 겨울을 향해 가는 날들

여름이거나 겨울로 반복되는 노정 속에

경유 계절로 작아져 버린 봄과 가을,

 

#.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훌훌 뿌려대던 유박 비료의 독성이

청산가리 이상의 독성이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알았다

날나리 농사의 방법을 고치기는 하겠으나

그간의 무지를 어이 거둘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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