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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으로 위장한 방사선이
스멀스멀 몸 안에 번진 뒤
이 몸 구석구석을 톺아 보게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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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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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째인지 헤아리기에도 지쳤으니
그저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두 시간 가량을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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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이
살아 있는 일이
아득한 꿈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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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엄의 원조처럼 보이는 의사는
더욱 강화된 근엄의 분위기와 목소리로
이상 없음으로 6개월 뒤... 검진 날짜를 확정 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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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은
의학쩍으로 6개월 연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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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재갈을 지은채
유령처럼 침통한 도시의 한구석
그까짖거 다아 잊어버리자고
헌책 몇 권을 품에 안고 돌아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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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언 수행 중인 손전화를 깨워
지금쯤
벌통에 코 박고 있을 친구에게 척독 한 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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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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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 년쯤 뒤에나 답장이 올 것이다
열 번 전화하면
열한 번 안 받는 친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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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처방은 여섯 달뿐이지만
무심한 친구의 답장을 받기 위해서는 일 년쯤을 살아 있어야 하니
명의보다
무심한 친구가 나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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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도 자도 자꾸 졸려서
독성 물질에 취한 것 같은 도시의 하룻밤
탈출하듯 돌아서서 산골짜기에 들어서니
초록은 맘 놓고 울울하고
새벽 물소리 같은 새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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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릴 수 없는 총생들 속에서
더불어 평화로우니
그까짓 사람의 세월
6개월이 됐든
6년이 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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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 아래
초록빛 바람 줄기들이
서리서리 청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