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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꼭 들어야 할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한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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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 마취 뒤에
귀 안쪽 머리 부분의 뼈를 건드리는 드릴 소리와
간혹 망치 소리와
고착되어 기능을 상실한 피부 조직을 떼어내는 소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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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도 감각도 없이
내 몸 깊은 곳에서 울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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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쯤의 수술이 끝날 무렵은
마취제 작용 시간의 끝 부분 이기도 해서
예리한 드릴 소리에 살짝 통증이 묻어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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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말고도
눈신경이 복잡하게 지나는 부분을 수술 길로 썼던 탓에
수술 후에는
귀의 기능이 회복된 것만큼
눈의 기능이 유지되는 것을 확인하는 일도 중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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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리는가? 와 한 묶음으로
잘 보이는가?를 물었으나
보이는 것들이 흐릿하다는 대답에
수술팀들이 우르르 모여 얼굴 좌우 신경을 자극하고 확인하는 법석과 함께
신경과 협진을 얘기하는 중인데
그중에 눈 밝은 사람 하나 있어 말 하기를
-안경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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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된 귀는
소독 솜들로 꼭 꼭 틀어 막혀 있으나
골전(骨傳) 음량으로 인한 가벼운 어지러움
세상은
여전히 들끓는 소리로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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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밤 네낮 동안
낯선 대처의 병원에 누워 남은 일생의 잠시를 탕진한 뒤
다시
초록 울울한 산중에 들어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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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명징해진
바람소리
새소리
그리고
이젠 사랑할 수도 있을
아내의 잔소리...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