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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하게 하늘을 가렸던 잎들은
노을빛 붉은 정염을 펼쳐 발등 소복하게 덮음으로써
가을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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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푸새가 푸석한 밭에 올라
가을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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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히 산새가 울고
바람이 잠시 어깨를 두드릴 뿐
혼자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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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귀퉁이
농익은 초록의 무 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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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이 남았구나
아이들과 형제들과
누구누구의 인연들 까지
매콤하게 버무려 익혀 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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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가득
김치 익어가는 동안 가슴 달달하여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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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바람에도 바스락거리는 마른 풀들을 걷어내고
비닐을 걷어내고...
그 틈새
기어이 겨울 냉이가 푸르게 엎드려 있으니
시시때때 성실한 자연 앞에서 조용히 근신하는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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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결혼한지 1년을 넘긴 날
집들이를 했다.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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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의 1박,
새벽에 잠 깨인 시골쥐는
아이들 깰새라 고양이 걸음을 걸어
낯선 도시의 해장국 집을 찾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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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귀가,
서울에서는 언제나
귀가가 아닌 탈출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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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아이들의 아우성과 성토에도 불구하고
이 노릇이 편하니
이 일을 또 어이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