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어이하리요

햇꿈둥지 2018. 11. 13. 19:08





#.

무성하게 하늘을 가렸던 잎들은

노을빛 붉은 정염을 펼쳐 발등 소복하게 덮음으로써

가을을 마쳤다.


#.

마른 푸새가 푸석한 밭에 올라

가을을 정리한다.


#.

간간히 산새가 울고

바람이 잠시 어깨를 두드릴 뿐

혼자의 일이었다.


#.

밭 귀퉁이

농익은 초록의 무 배추


#.

김장이 남았구나

아이들과 형제들과

누구누구의 인연들 까지

매콤하게 버무려 익혀 가는 일,


#.

독 가득

김치 익어가는 동안 가슴 달달하여 행복하겠다.


#.

작은 바람에도 바스락거리는 마른 풀들을 걷어내고

비닐을 걷어내고...

그 틈새

기어이 겨울 냉이가 푸르게 엎드려 있으니

시시때때 성실한 자연 앞에서 조용히 근신하는 마음이 된다.


#.

아이가

결혼한지 1년을 넘긴 날

집들이를 했다.

어쨌든...


#.

서울에서의 1박,

새벽에 잠 깨인 시골쥐는

아이들 깰새라 고양이 걸음을 걸어

낯선 도시의 해장국 집을 찾았었다.


#.

그리고 귀가,

서울에서는 언제나

귀가가 아닌 탈출 이었다.


#.

뒤늦은 아이들의 아우성과 성토에도 불구하고

이 노릇이 편하니

이 일을 또 어이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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