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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단풍 뒤에
가만히 숨어 있는 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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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운동이나 명상으로 한정 될 수 없는 그 이상의 행위이다
말하자면
직립의 본디를 회복하는 일이며
인간 본래의 생물적 의식을 되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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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에서
두발이 땅에 닿아 있는 부분보다
한발씩으로 몸을 지탱하는 부분이 훨씬 크다
결국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 의미 이외에
온몸의 감각과 균형을 동물적으로 회복하는 일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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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산속살이가 어느덧 20년인데
이제서야 마을 둘레 산길을 걸었다
오래전 가난하고 힘겨웠던 삶의 흔적들이
상처의 딱정이 처럼 남아있는 곳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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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 폐묘 위에 아름들이 나무들
일찌기 수목장 있었음을 이제야 알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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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린 밝음보다 먼저
물기 가득한 바람 불고
치악이 검은 등을 세운채 동그랗게 앉아 있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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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의 된서리 끝에 얼음이 얼었다
겨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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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아 버린 보일러 연통을 손질하고
밭의 마른 푸새들을 정리하는 사이
가을의 등을 떠밀고
겨울의 손목을 잡아당기듯 소란스러운 바람, 바람,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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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가득 떨어진 나뭇잎
마당 가득 떨어져 누운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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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같았던 이 계절을 기억하기 위해
나무들 가슴 속에는 동그란 나이테 하나씩이 만들어 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