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상경기

햇꿈둥지 2007. 11. 26. 10:36

 

 

아침 일찍 서울로 떠나는 아내는 멀쩡하게 자기 차는 버려 두고

애꿎은 남의 차를 징발해 버렸다

 

차가 없다는 건...때로 여유로움이 된다는 사실

 

버스를 타고

서울 언저리로 틀어 박히는 동안 거리엔 고양이 걸음의 어둠이 내리고

왼갖 삐까번쩍한 불빛들이 어둠의 속살을 헤집기 시작했고

거리 거리엔

박속 처럼 뽀얀 얼굴의 아이들이 마음 놓고 희희덕 거리고 있었다

 

버스들이 매연을 뿜어 낸 그 한가운데로 포장마차의 음식 냄새들이 뒤엉키고

승강장의 안내판을 보지 않고도 자신있게 버스에 올라 타는 서울 사람과

한참 동안이나 안내판을 보고도 기어이 가는 곳을 물어야 하는 시골 사람과

소음 탓인지 일찍부터 보청기를 귀에 꽂은 젊은 군상들과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손 가득 무거운 짐을 든 사람들과

머리와 돈을 굴리는 사람들과

막히고 밀리는 길을 따라 바퀴를 굴려야 하는 사람들과

어둠 깊이에서도 뽀얀 불빛을 뿜어내는 정형외과 간판과

그 비용 마련을 위해 밤에도 여전히 바쁠 것 같은 사람들과

투명한 곱창집 유리 안에 가득 들어 찬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열심히 씹고 있는 곱창보다 더 질긴 도시의 일상과

그들이 찰랑하게 따르어 마시는 하늘빛 소줏 잔과

쓰레기 같은 엔진 소리와 클랙슨 소리가 뒤엉킨 허공에 우뚝 솟아 있는 사람의 집들과

그들이 갖고 싶어 하는 빛깔 고운 입성과

길 바닥을 걸으며 함부로 먹어도 좋은 기름기 번드르르한 패스트 푸드와

위안의 주기도문 같은 웰빙과

비상구 같이 불 밝혀 있는 로또 복권 판매점의 간판과

 

멀미...

 

한없는 멀미...

 

내가 촌놈임을 자각 할 때

비로소 진정되는

지독한 도시 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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