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감자 세박스,
나는 아직도 이 분량의 씨감자를 몇평 정도의 밭에 심어야 하는지 가늠치 못한다.
겨울동안 얼어 붙은 물과 씨름을 했었고
간당간당 떨어져 가는 땔나무를 구 하느라 진을 뺐으므로 봄에 대한 기대는 다른해와 다르게
이런 저런 난제 해결에 대한 기대였을 뿐,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그것을 거두어 일용 할 음식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기대는 별반 크지 않았으므로
종구씨의 트랙터가 집 위 너른 밭에서 코침 맞은 너구리 제자리 맴돌듯 고운 흙살을 뒤집을 때도
그 멀쩡하고 실한 냉이가 짓밟히는게 안타까울 뿐 이었다.
세박스의 감자를 한구덩이에 장아찌 박듯 처 박아 한번에 쫑을 내는 것이었으면 좋겠구만
선채로 말라 비틀어진 고춧대를 거두어내고
밭고랑 비닐을 정리하고
다시
퇴비와 비료를 뿌림으로써 겨우 트랙터 경운 전의 일이 마무리 되는 정도였고
트랙터의 맴돌이가 끝난 뒤에 겨우내 잠들어 있던 관리기를 두드려 깨워 밭이랑을 짓는 일,
그리고 일일히 비닐을 씌우는 일까지...
트랙터 경운을 끝낸 시간이 다섯시 넘어이니 산골엔 벌써 땅거미가 지기 시작 했으므로
"나머지는 다음에 하자..."는 볼멘 소리에
"어찌 밭 주인이 되어 가지구 내가 해도 시원찮을 소리나 하냐?"는 면박에 이어
"내일 비가 온다 하는데 밭갈아 놓은거 다져지면 말짱 황..."이라며 등을 떠 밀어대는 통에
산꼴살이 시작 이래 한밤중 누깔에 불을 켜고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일 끝낸 시간이 밤 여덟시경,
마당가에 철푸덕 주저 앉아 저녁을 겸한 술추렴,
늦은 시간까지 일머리를 잡아 끌어 준 종구씨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피곤함 보다 더 크기는 하지만
그래두 할 말은 해야쥐~
데모도가 더 쎄가 빠진다니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