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렸음
이번에는 절차 이행 방식이 상당히 조심스럽고도 음흉해서
비로 오시다가 눈 섞은 진눈깨비로 오시다가 본격 함박눈 모드로 바꾸어 퍼 부은 뒤에
영하 15도쯤의 강추위로 꽁꽁 덮어 버렸다.
당연히 흙 바로 윗부분의 진눈깨비는 즉시 얼어붙어 버림으로써
아이스코팅과 스노우패킹 까지 일련의 과정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은 꼴이 되어서
눈 치울 일도 아득 하거니와 차 오르내림은 일찌감치 포기,
마을 입구에 차를 세워둔 채 새벽 별빛을 더듬어 오르내리기를 사흘쯤
휴일인 토요일이 되었고
한 겨울 산중에 등푸른 바다 한도막과 김장 김치 이것 저것들을 아낌없이 꺼내 아침상을 차려 준 아내는
꾸역 꾸역 고봉밥을 권해 놓고는 밥상보다 더 뜨거운 눈 치우기 과제를 내 어깨에 얹어 주었다.
삽으로 퍼 내기를 한시간,
넉가래로 밀기를 한시간,
한숨이 신음으로 바뀔 무렵쯤
꼬물딱지 눈썰매를 들고 나타나신 마나님
빗자루 거꾸로 탄 마귀할멈 폼으로
길 위에 열린 길의 개통식을 위해 우아하게 눈썰매로 하강 하시도다.
그 뒷모습 하염없이 꼬나보다가
우리 궁합
철딱서니 없는 일로는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깨우치도다
다시
그 위에 염화칼슘 다섯 포대를 지게로 져 올려 뿌림으로써 눈 치우기 상노가다 상황은 끝이 났지만
겨울나기 동안 이런 환장 할 놈의 일들이 얼마나 반복될지 알 수 없다는 것,
어쨌든 왼종일의 억지 끝에 차들은 산골 마당으로 올라섰고
일용할 양식이 떨어져 가던 강아지들의 구휼이 가능해졌으므로
성냥갑 만한 난로 곁에 지친 허리를 꼬부린 채
초록 흐드러진 봄이나 꿈 꾸던 노루잠 속 허튼 기도,
하느님
자동으로 내린 눈 처럼
자동으로 치워지는 눈 좀 개발해 보시지요